손가락이 다섯 개였다.
전우치는 천장을 바라보며 그 사실을 확인했다. 오른손을 들어 올려 눈앞에 펼쳐 보이니, 손가락이 다섯 개였다. 왼손도 마찬가지였다. 그것 자체는 문제가 아니었다. 문제는 그 손가락이 너무 짧고, 너무 통통하고, 손마디 하나에 아직 제대로 굳지도 않은 어린아이 특유의 부드러운 살이 도톰하게 차 있다는 것이었다.
허.
전우치는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떴다.
천장은 여전히 낮았다. 낮고 흰색이었으며, 어딘가 이국적인 냄새가 났다. 묵은 먼지와 목재 기름, 그리고 그 아래 깔린 익숙지 않은 무언가, 이를테면 마치 금속을 태운 것 같은 희미한 냄새였다. 조선의 방과는 다른 공기였다. 창밖으로 회색 하늘이 보였고, 이름 모를 새 한 마리가 철봉처럼 생긴 구조물 위에 앉아 고개를 비틀며 이쪽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일어나야 했다.
전우치는 일어나려다 멈췄다. 몸이 익숙하지 않았다. 수십 년을 함께한 제 몸, 크고 단단하고 도기(道氣)로 단련된 그 몸이 아니었다. 이것은 너무 가벼웠다. 이불을 걷어차는 다리가 짧았다. 침대 끝까지의 거리가 생각보다 가까웠다. 발을 바닥에 내딛는 순간, 그는 자기 눈높이가 한참 낮아진 것을 깨달았다.
방은 작았다. 조선의 사랑방보다도 좁았다. 한쪽 벽에는 좁은 침대가, 맞은편에는 자그마한 책상과 의자가 있었고, 구석에는 정체불명의 상자들이 쌓여 있었다. 창은 하나였고, 창틀에는 녹슨 자물쇠가 달려 있었다. 방 전체에서 풍기는 기운이 억눌리고 갑갑했다. 기가 흐르지 않았다. 돌아갈 곳을 잃은 물처럼 구석구석에 고여 있었다.
전우치는 천천히 숨을 들이마셨다.
의식은 멀쩡했다. 기억도 온전했다. 구름을 타던 감각, 부적을 그리던 붓의 무게, 귀신 셋을 한꺼번에 부려 저잣거리를 뒤집어엎던 그 통쾌한 기억까지. 전우치 자신이라는 것은 분명했다. 다만 그것이 담긴 그릇이 문제였다.
책상 위에 무언가 놓여 있었다.
네모난 것이었다. 흰색이었고, 두꺼운 양피지 같은 재질이었다. 전우치는 다가가 그것을 집어 들었다. 이 세계의 문자였다. 왼쪽부터 읽어나가는 방식이 어색했지만, 기억 속에 있었다. 이 몸이 원래 가지고 있던 기억이었다. 언어가 흘러 들어왔다.
봉투에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전우치 님께.
허.
전우치는 봉투를 이리저리 뒤집어 보았다. 초록색 잉크였다. 글씨는 또렷하고 정연했다. 발신지에는 긴 문장이 적혀 있었는데, 요약하자면 영국 어딘가에 있는 학교였다. 그는 봉투를 뜯었다.
편지는 양피지 두 장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첫 문장을 읽었다. 두 번째 문장을 읽었다. 세 번째 문장까지 읽고 나서, 전우치는 편지를 내려놓고 창밖 하늘을 바라보았다. 새는 아직 거기 있었다.
마법 학교.
그는 다시 편지를 들었다. 처음부터 다시 읽었다. 이번에는 더 천천히, 각 단어를 꼼꼼히 뜯어보며 읽었다. 읽고 나서 한 번 더 읽었다. 세 번째 독파를 마친 뒤에도 내용은 변하지 않았다. 호그와트 마법 학교. 입학 허가. 가을 학기 시작. 필요한 교과서 목록, 교복 목록, 그리고 마지막에 조금 강조된 문장.
지팡이는 올리밴더스에서 구입하시기 바랍니다.
지팡이.
전우치는 봉투를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방 안을 한 바퀴 둘러보았다. 벽, 천장, 창문, 낡은 책상, 구석의 상자들. 아무도 없었다. 이 황당한 상황을 설명해 줄 사람이 없었다. 대체 누가 전우치를 이 몸 안에 밀어 넣었는지, 무슨 주문이 그를 이 이국의 방까지 끌고 왔는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그는 오른손을 들었다.
손바닥을 위로 향하게 하고, 눈을 반쯤 감고, 단전 아래에서 기를 끌어올렸다. 수십 년의 수련이 근육 기억처럼 남아 있었다. 숨을 고르는 방식, 기를 손끝으로 모으는 방법, 화기(火氣)를 불러 모아 형상을 부여하는 순서. 몸은 달라졌지만 도는 달라지지 않는다.
불꽃이 피어올랐다.
작은 불꽃이었다. 전우치의 손바닥 위에서 엄지손가락 한 마디만 한 크기로 조용히 타올랐다. 주황색과 파란색이 뒤섞인, 아무 연료도 없이 스스로 존재하는 불이었다. 차가운 방 안을 잠깐 환하게 비추었다가 그가 손가락을 오므리자 스르르 꺼졌다.
전우치는 손바닥을 내려다보았다.
멀쩡했다. 아프지도 않았다. 도술은 살아 있었다. 이 작고 보잘것없는 몸 안에도, 기는 흐르고 있었다. 하늘과 땅의 이치는 어디서든 통하는 모양이었다.
그는 한숨을 내쉬었다.
좋아. 도술이 된다. 그렇다면 죽은 것은 아니다. 전생이라는 것도, 낭설이 아닌 것 같다. 그렇다면 이것은 그저 몹시 기이한 처지일 뿐이다.
전우치는 침대에 걸터앉았다. 스프링이 삐걱거렸다. 이상한 구조물이었다. 왜 침상 안에 쇠를 넣은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지금 따질 문제가 아니었다. 그는 다시 봉투를 들어다 보았다.
전우치 님께.
님 자(字)를 붙였다. 예의는 있는 자들이었다.
마법 학교라는 것이 어떤 곳인지, 그 지팡이라는 것이 정확히 무엇인지, 이 나라의 법도가 어떠한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전우치는 살면서 훨씬 황당한 상황들을 헤쳐 온 바 있었다. 저승길 바로 앞에서 귀신 대장과 흥정한 적도 있었고, 호랑이 셋이 한꺼번에 달려드는 산속에서 신선 행세를 하며 빠져나온 적도 있었다. 임금의 침전에 몰래 들어가 하룻밤을 보낸 일도 있었는데, 그때에 비하면 이것은 훨씬 문서가 정연하고 절차가 명확했다.
입학 허가서라는 것은 요컨대 오라는 뜻이었다.
전우치는 잠시 창밖의 회색 하늘을 바라보았다. 구름이 묵직하게 깔려 있었다. 빗기운이 느껴졌다. 이 나라의 하늘은 조선과 달리 마치 항상 울 것처럼 생겼다.
허나 하늘은 하늘이었다.
기는 통했고, 불꽃은 피어올랐으며, 편지는 전우치를 알고 있었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나머지는 가서 보면 될 일이었다. 도술사 전우치가 열한 살짜리 몸뚱이 하나 감당 못 할 까닭이 없었다.
다만.
그는 다시 손바닥을 들여다보았다. 잠깐 피어올랐다 꺼진 불꽃의 온기가 아직 남아 있었다.
수염이 없다.
이것만은 참으로 유감스러운 일이었다. 전우치의 수염은, 말하자면 그의 자부심과 같은 것이었다. 수십 년을 정성껏 길러온 수염이었다. 그것 없이 가르침을 내리자니 위엄이 절반은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그는 턱을 손으로 쓸었다. 매끈했다. 영락없는 어린아이의 턱이었다.
전우치는 창밖 새를 향해 중얼거렸다.
"이거 몹시 불편한 세상이로구나."
새는 고개를 한 번 더 비틀고는 날아가 버렸다.
방 안에 혼자 남은 그는 봉투를 다시 집어 들고, 두 번째 장 맨 아래에 빼곡하게 적힌 준비물 목록을 찬찬히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교과서들, 망원경, 황동 저울, 그리고.
지팡이, 길이 무관, 재질 무관.
전우치는 잠시 그 항목 앞에서 멈췄다.
도술사가 나뭇가지 하나에 힘을 담는다. 과연 그것이 가능한 것인지, 가능하다 해도 그것이 옳은 것인지, 나뭇가지를 통해 기를 흘린다는 발상이 어떤 원리에 기반한 것인지, 물어볼 사람도 없었고 비교할 문헌도 없었다.
하지만 전우치는 목록 맨 아래에 있는 그 항목을 손가락으로 한 번 두드렸다.
모르는 것은 배우면 그만이었다.
그가 모르는 것이 있다는 사실 자체가, 어쩌면 수십 년 만에 처음으로 느끼는 일이었다. 불쾌한 감각이었다. 그러나 그 불쾌함 안 어딘가에, 전우치는 알아채지 못한 척하면서도 분명히 느끼는 무언가가 있었다.
그것은 호기심이었다.
그는 봉투를 접어 품 안에 넣었다. 그리고 두 발로 바닥을 딛고 일어섰다. 무릎이 낮았다. 창문이 생각보다 위에 있었다. 천장은 생각보다 멀었다. 이 몸에 익숙해지려면 시간이 걸릴 것이었다.
하지만 불꽃은 피어올랐다.
그것으로 충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