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문대의 향 연기는 언제나 침향(沈香)이었다.
나는 그 냄새를 아직도 기억한다. 차갑고 깊은, 나무가 물속에서 천 년을 썩어 단단해진 냄새. 소씨 가문의 검증 의식이 열리는 날이면 어김없이 그 향이 피워졌고, 향 연기는 천장 가까이 고여 아이들의 눈높이에서는 보이지 않았다. 오직 장로들의 눈높이에서만, 그 연기는 보였다. 어린 시절의 나는 그 사실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모든 것이 그러했으니까. 가문 안에서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은 언제나 높이로 결정되었다.
스물아홉이 된 지금의 나는 그때의 일을 돌이켜볼 때마다 먼저 그 냄새를 떠올린다. 그리고 묻는다. 불꽃이 꺼지던 날의 소환은, 수치를 견딘 뒤에 남은 소환은, 과연 살아남을 만한 자아였는가.
쉽게 답이 나오지 않는다. 어쩌면 그것이 이 이야기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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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증 의식은 동짓달 열흘에 열렸다.
소씨 가문의 아이들은 열두 살이 되는 해에 처음으로 정식 영기(靈氣) 심사를 받는다. 오행(五行)의 기운 중 어느 계열에 속하는지, 그 밀도는 어느 수준인지, 앞으로 어떤 수련 경로를 밟아야 하는지를 장로단이 직접 측정하고 판정한다. 대부분의 아이들에게 이 의식은 설레거나 두려운 어느 한쪽이었다. 나에게는 두 가지 모두가 아니었다. 나는 그것이 형식이라고 생각했다. 결과가 이미 알려진 연극.
그해 가을, 나는 가문 내에서 세대의 기재(奇才)라 불렸다. 그 호칭이 처음 붙은 것은 내가 아홉 살 때였고, 열한 살이 지나도록 그 평가는 흔들리지 않았다. 대공자 소정(蘇庭)이 나를 가르치던 사범에게 넌지시 물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소환의 영기는 어느 정도로 보십니까. 사범은 삼십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하는 자질이라 답했다고 했다. 나는 그 말을 전해 들었을 때 기쁨보다 부담이 앞섰는데, 그 감각을 당시에는 이해하지 못했다. 지금은 안다. 그것은 예감이었다.
심문대는 가문 본채 후원 깊숙이 세워진 팔각형의 돌 단이었다. 단 중앙에는 영석(靈石)이 박혀 있었는데, 순수한 석영계 광물에 대대로 가문의 영기를 침투시켜 만든 것으로, 수련자가 손을 올리면 그 영기의 색과 온도와 맥동 수를 외부에서 읽을 수 있었다. 색이 붉을수록 화(火)의 기질이 강하고, 청색에 가까울수록 수(水)의 계통이었다. 소씨 가문은 화계 혈통으로 이름 높았고, 사흘 동안 이어지는 검증 의식에서 붉은빛을 발하지 못한 아이는 그해 계획에서 처음부터 등급이 낮게 책정되었다.
나는 첫째 날 낮에 불려 나갔다.
열두 명의 장로가 좌우로 나뉘어 앉아 있었다. 본가와 분가, 직계와 방계, 나이와 공력(功力)으로 층위가 나뉜 열두 명의 시선이 일제히 내게 쏠렸을 때, 나는 그 무게가 손등에 물리적으로 얹히는 느낌을 받았다. 차갑고 무거운, 기대라는 이름의 무게였다. 담 밖에서 불어온 겨울바람이 후원의 잎 없는 가지들을 건드리는 소리가 났다. 침향의 연기가 내 코끝 위로 천천히 흘렀다.
나는 단 위로 올라가 영석 앞에 섰다.
오른손을 올렸다.
처음 사 오 초 동안은 따뜻했다. 손바닥 아래에서 돌의 온기가 올라왔다. 영석이 내 영기를 감지하고 반응하는 감각이었다. 어릴 때부터 익숙한 느낌이었다. 몸 중심 어딘가에서 실처럼 가는 열기가 올라와 손끝으로 모이는, 그 투명한 온기. 나는 숨을 고르게 쉬었다.
그런데 다음 순간, 그것이 사라졌다.
손바닥이 차가워졌다. 아주 천천히, 그러나 되돌릴 수 없는 속도로. 처음에는 집중이 흐트러진 것이라 생각했다. 눈을 감고 단전(丹田) 부위로 의식을 내렸다. 아무것도 없었다. 물이 없는 우물처럼, 그 자리는 텅 비어 있었다. 나는 더 깊이 내려갔다. 여전히 아무것도 없었다. 마른 땅처럼, 갈라진 강바닥처럼, 단 하나의 열기도 남아 있지 않았다.
영석은 빛을 내지 않았다.
처음에는 침묵이었다. 그 침묵이 얼마나 오래 지속되었는지 나는 지금도 정확히 알지 못한다. 아이의 시간과 어른의 시간은 다른 속도로 흐른다. 아이의 공포는 어른의 기억 속에서 늘 더 길어진다. 어쨌든 그 침묵 뒤에 장로 중 하나가, 나중에야 알게 된 이름은 소익(蘇翼)이었는데, 낮고 평탄한 목소리로 말했다.
다시 해보아라.
나는 다시 했다. 소용없었다.
한 번 더.
역시 소용없었다.
그때 내 곁에 서 있던 의전 종인(從人)이 무언가를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그것이 무슨 말이었는지 나는 끝내 알아듣지 못했다. 하지만 그 중얼거림이 옆으로 퍼져나가는 것은 느꼈다. 물에 돌을 던지면 파문이 번지듯이. 장로들의 얼굴 사이로, 그리고 후원 담장 너머 구경하던 아이들 사이로.
나는 그 순간 손을 내렸다.
손끝이 떨렸다. 나는 그 떨림을 감추기 위해 주먹을 쥐었다. 손톱이 손바닥 살에 박혔다. 침향 냄새가 갑자기 너무 짙었다. 어느새 숨이 얕아져 있었다.
소익 장로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키 큰, 창백한 얼굴의 노인이었다. 그는 내게로 걸어와 아무 말 없이 내 손목을 잡고 맥을 짚었다. 손가락의 압력이 강했다. 진맥이 끝난 후 그는 고개를 한 번 끄덕였는데,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 나는 읽을 수 없었다. 그는 뒤돌아 자기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자.
그것이 전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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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사이 가문 전체에 소문이 퍼졌다.
소환의 영기가 사라졌다. 심문대의 영석이 빛을 내지 않았다. 삼십 년의 기재가 하루아침에 폐인이 되었다. 사람들은 그 이야기를 전하면서 놀라는 척했지만 나는 곧 알아차렸다. 그 놀람 안에 안도가 있었다. 질서가 회복되었다는 안도. 너무 높이 치솟으려 했던 무언가가 제자리를 찾았다는 안도.
인간은 본래 남의 추락에서 안도한다. 특히 그 추락한 자가 자신보다 높은 위치에서 떨어질 때. 나는 그것을 열두 살에 배웠다.
이틀째 아침, 나는 의식에 다시 불려가지 않았다. 대신 어머니의 방에 있었다. 방 안은 조용했다. 어머니 소씨 부인은 창가에 앉아 뜰을 내다보고 있었고, 나는 그 등 뒤에 서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지 못했다. 어머니의 등은 평소보다 좁아 보였다. 아니, 어쩌면 내가 처음으로 어머니의 등이 좁다는 것을 알아본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어머니가 말을 걸지 않았기 때문에 나도 말을 걸지 않았다.
한참 후 어머니가 돌아보았다. 얼굴이 피곤해 보였다. 눈 아래 그늘이 짙었는데, 그것이 밤새 잠을 자지 않은 탓인지 아니면 다른 무언가의 탓인지는 알 수 없었다. 어머니는 나를 보면서 무언가를 결정하려는 사람의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결정이 내려지지 않은 채로 그냥 고개를 숙였다.
환아.
예.
오늘은 아무 데도 가지 마라.
나는 그 말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이해했다. 아무 데도 가지 말라는 것은, 보이는 곳에 있지 말라는 것이었다. 적어도 지금 이 시간만은.
나는 방 안에 있었다. 바깥에서 의식 진행 소리가 들렸다. 누군가의 이름이 불리고, 박수가 나고, 낮은 탄성이 들렸다. 뒤이어 다른 이름이, 또 다른 이름이. 그 소리들이 담장을 넘어 내 방까지 흘러들어왔다. 나는 창문을 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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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흘이 지난 뒤, 가문의 움직임은 놀라울 만큼 신속했다.
소씨 가문의 장로단은 심문 결과를 공식 문서로 정리하고 분가 각처에 통보했다. 소환, 소씨 본가 직계 삼자, 영기 미발현으로 인해 수련 계획에서 제외한다. 이후의 처우는 가문 규례에 따른다. 규례에 따른 처우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문서에는 적혀 있지 않았다. 그러나 그 공백이 실질적인 내용이었다. 존재하되 없는 것으로 취급된다는 것.
열이틀 후, 내 방은 달라졌다. 방 크기는 같았다. 가구도 그대로였다. 그러나 매일 아침 방으로 들어와 청소하던 시녀가 오지 않았다. 저녁 수련 전에 놓이던 보양 음식이 사라졌다. 식사는 본채 식당이 아니라 바깥채 공동 식당에서 하도록 안내받았다. 안내라는 말을 쓰지만, 실제로는 그냥 그렇게 되어 있었다.
어느 날 아침, 나는 사범의 수련실로 갔다. 문 앞에서 문을 두드렸다. 안쪽에서 인기척이 났고, 잠시 후 문이 열렸다. 사범은 나를 보았다. 그의 얼굴에 무언가가 지나갔는데, 그것을 나는 지금도 정확히 명명하지 못한다. 당혹도 아니고 냉담도 아니고, 어쩌면 그 두 가지 사이 어딘가에 있는, 결정을 미루는 사람의 표정이었다.
소환아.
예, 사범님.
오늘은 다른 수련생들과 일정이 있어서. 다음에 다시 오너라.
나는 고개를 숙이고 물러났다.
다음에 다시 오너라. 나는 다시 가지 않았다. 사범도 나를 부르지 않았다. 그것으로 우리의 사제 관계는 끝이었다. 정식으로 끊겼다는 선언도, 작별 인사도 없었다. 관계는 그냥, 서서히, 있었다가 없어졌다.
나는 그러한 것들을 목록으로 만들어 두었다. 마음속으로. 사라진 것들의 목록. 시녀. 보양 음식. 식당의 자리. 사범. 같이 수련하던 아이들의 인사. 그 목록은 날마다 길어졌고, 나는 그것을 정확하게 기억하려 했다. 왜 그랬는지 지금은 안다. 그것이 사라진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목록에 적어두면, 적어도 내가 알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지킬 수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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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증 의식으로부터 스무 날쯤 지난 어느 오후, 후원 서편 담장 아래 쭈그리고 앉아 맨손으로 지면의 흙을 만지고 있을 때, 나는 그것을 처음으로 느꼈다.
단전이 비어 있다는 느낌이 아니었다. 뭔가 다른 것이었다. 빈 곳이 아니라 잠긴 곳 같은 느낌. 자물쇠가 채워진 방 앞에 선 것 같은. 문이 있고, 그 안에 무언가가 있고, 다만 내가 그것을 열 수 없는. 나는 그 감각을 더 가까이 끌어당기려 했는데, 그 순간 담장 너머에서 사람의 목소리가 들렸고, 나는 깜짝 놀라 의식이 흩어졌다.
그 느낌은 사라졌다.
나는 한동안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담벼락에 기댄 등으로 겨울 돌의 차가움이 스며들었다. 하늘은 흰빛으로 낮게 깔려 있었고, 멀리서 까마귀 우는 소리가 났다. 무릎 위에 올린 두 손을 내려다보았다. 지면의 흙이 손금 사이에 끼어 있었다. 거칠고 붉은 흙이었다.
나는 그때 무언가를 결심했는데, 그것이 무엇인지 당시에는 정확한 말로 표현하지 못했다. 지금은 표현할 수 있다. 나는 그 잠긴 문을 열겠다고 결심한 것이 아니었다. 그보다 먼저, 문이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가문이 나를 없는 것으로 취급하기 시작했다. 사범이 나를 보지 않기로 했다. 수련 동기들이 내 이름을 피하기 시작했다. 그 모든 것들이 나에게 가르치려 한 것은 하나였다. 너는 없다. 영기 없는 자는 없는 것이다.
나는 그 교훈을 거부했다.
하지만 그것이 올바른 거부인지, 올바른 방식의 거부인지는 알지 못했다.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열두 살의 나에게 가장 솔직한 상태였을 것이다. 무언가를 거부하면서도 그 거부의 자격이 자신에게 있는지를 의심하는 것. 수치를 견딘 자아가 살아남을 만한 자아인지를 묻는 것.
나는 지금도 그 질문에 완전히 답하지 못했다. 이 이야기를 쓰는 이유 중 하나는 그것이다.
답이 있기 때문이 아니라, 그 질문을 정직하게 들고 가는 것이 내가 아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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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저녁, 어머니 방에서 흘러나온 불빛이 후원에 기다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나는 그 그림자를 내 방 창문을 통해 바라보았다. 어머니는 그 밤도 잠을 자지 않은 것 같았다. 불이 꺼지지 않았다. 창호지 위로 어머니의 실루엣이 때로 움직이고 때로 멎었다. 무언가를 쓰는 것처럼, 아니면 무언가를 읽는 것처럼.
나는 가서 여쭤볼 수도 있었다. 그러나 가지 않았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 가야 했다고 생각한다. 묻지 않아도 좋으니, 그냥 옆에 앉아 있기라도 해야 했다고. 그러나 열두 살의 나는 자신의 수치가 너무 커서 어머니의 방 문을 두드릴 용기가 없었다. 수치는 때로 그런 식으로 작동한다.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로 가는 길을 먼저 막는다.
어머니의 방 불빛은 내가 잠이 들 때까지 꺼지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꿈을 꾸지 않았다. 빈 우물의 바닥처럼, 그 밤은 아무것도 없이 깊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