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속에서 도자기는 울지 않는다.
남대문 시장 뒷골목, 비닐 지붕 아래 플라스틱 의자 두 개. 차민혁은 신문지에 싼 사발 하나를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신문지가 빗물에 젖어 글자가 번졌다. 어제 날짜. 경제면.
"조선 중기."
"그래 보이지."
남자는 이름이 없었다. 다들 그냥 나사장이라고 불렀다. 나이는 쉰다섯에서 일흔 사이 어딘가. 얼굴이 오래된 가죽 같았다. 안경을 코끝에 걸치고 사발을 들어 빛에 비춰봤다. 형광등. 녹슨 갓. 조선 중기 청화백자 사발과 나사장의 얼굴이 같은 빛을 받았다.
"유약이 아쉽네."
"아쉬울 거 없어요."
"물었나? 내가."
민혁은 입을 다물었다. 빗소리가 비닐 지붕을 두들겼다. 군용 방수 재킷 어깨에 빗물이 스며 있었다. 그는 느끼지 못했다.
나사장이 사발을 내려놓았다. 신중하게. 물건을 아끼는 사람의 손이었다. 돈을 아끼는 사람의 손이기도 했다.
"다섯."
"열둘이에요."
"일곱."
"열."
"여섯."
침묵이 왔다. 민혁은 숫자를 계산했다. 계산이 끝나기도 전에 이미 알고 있었다. 여섯으로 받는다. 그래야 한다. 이달 창고 임대료, 차 기름, 오길수 밥값. 빚은 셈에 넣지 않았다. 셈에 넣을 수 있는 종류가 아니었다.
"여섯."
나사장이 뒤로 물러났다. 표정이 없었다. 이긴 사람의 얼굴이 아니었다. 이미 이겼다는 걸 아는 사람의 얼굴이었다.
오길수는 비닐 지붕 기둥에 등을 기대고 서 있었다. 두 손을 점퍼 주머니에 찌르고. 거래가 진행되는 동안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게 그의 역할이었다. 거기 있는 것. 민혁이 흔들리지 않게.
나사장이 봉투를 꺼냈다. 민혁은 세지 않고 받았다.
"또 오게."
"물론이죠."
빗속으로 나왔다. 좁은 골목. 리어카 하나가 지나갔다. 아저씨가 비닐 우산을 쓰고 있었다. 뼈대가 부러진 우산. 오길수가 리어카를 보다가 말했다.
"여섯은 너무 적었다."
"알아."
"왜 받았어."
민혁은 걷고 있었다. 오길수가 따라왔다.
"배가 고프면 협상이 안 돼."
"배 안 고픈데."
"아니면 창고."
오길수가 입을 다물었다. 그도 알고 있었다. 물건 값이 아니라 시간 값이었다. 이 시장에서 버틸 시간. 다음 판이 올 때까지.
문제는 다음 판이 언제 오느냐였다.
장마가 석 달째였다. 비가 그치지 않는 여름은 처음이었다. 발굴이 없었다. 비가 오면 땅이 닫힌다. 물이 차고, 진흙이 흐르고, 무덤 안에 물이 고인다. 물 속에서 건진 유물은 제값을 못 받는다. 나사장 같은 사람들은 안다. 장마가 길수록 물건의 질이 떨어진다는 걸. 그래서 기다린다. 여유 있게.
민혁은 여유가 없었다.
을지로는 달랐다. 남대문이 물건을 파는 곳이라면, 을지로는 물건의 역사를 파는 곳이었다. 뒷골목 조명 가게 사이, 철물 냄새와 기계유 냄새 사이. 골동품 가게들이 있었다. 간판도 없는. 아는 사람만 아는.
민혁이 아는 가게 중 하나였다.
박씨 가게. 상호 없음. 창문에 종이로 햇빛을 막아두었다. 문을 열면 먼지 냄새가 먼저 나왔다. 오래된 나무. 금속 녹. 그 아래 희미하게,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의 냄새. 과거 같은 건 냄새가 없어야 하지만, 이 가게에서는 났다.
박씨는 일흔이 넘었다. 앞니가 두 개 없었다. 말할 때마다 공기가 새는 소리가 났다.
"왔어요."
"와요."
박씨는 찻잔을 내밀었다. 민혁은 받지 않았다. 오길수는 받았다. 받고 나서 한 모금 마시고 표정이 묘해졌다. 보이차였다. 오래된 것. 쓰고 나무 같은 맛.
"저녁 먹었어요?"
"나중에요."
"안 먹겠다는 말이네."
박씨가 후미진 쪽으로 걸어갔다. 민혁이 따라갔다. 을지로 가게들에는 대부분 뒷방이 있었다. 창고이거나 사무실이거나, 아니면 손님에 따라 다른 방이거나. 박씨 가게 뒷방은 세 번째였다.
문을 열었다.
남자가 앉아 있었다.
민혁은 멈추지 않았다. 발이 문지방에서 한 박자 버텼다가 넘어갔다. 그게 전부였다.
낯선 사람이었다. 나이는 사십 중반에서 오십 초반. 정장을 입고 있었다. 을지로에서 정장은 이상했다. 이 골목에 정장을 입고 오는 사람은 두 종류였다. 세무서 직원이거나, 사려는 게 있는 사람이거나.
세무서 직원은 저 눈을 하지 않는다.
남자는 앉아서 테이블을 보고 있었다. 테이블 위에는 찻잔. 앞에 아무것도 없었다. 기다리는 사람의 자세였다. 급하지 않은 사람의 자세였다.
민혁이 의자를 당겨 앉았다. 맞은편.
"누구예요."
"황금이라고 합니다."
가짜 이름이었다. 이름이 황금이라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이 골목에서 가짜 이름을 쓰는 건 드레스 코드 같은 것이었다.
"박씨한테 들었어요."
"뭘요."
"당신 이름."
민혁도 가짜 이름이었다. 혹은 가짜 신분이었다. 기록상으로 차민혁이라는 이름의 전직 군인은 십이 년 전에 소멸했다. 제대도 아니었다. 소멸이었다. 그 사람이 지금 여기 있다는 걸 아는 사람은 몇 안 됐다. 박씨는 그중 하나였다.
황금이 손을 테이블 위에 올렸다. 봉투 하나. 얇은 것. 서류나 사진 정도 들어갈 크기.
"볼 것이 있어서요."
열지 않았다. 밀어놓기만 했다. 민혁 쪽으로.
민혁은 보지 않았다. 황금의 얼굴을 봤다. 정장 칼라. 아무 장신구도 없었다. 시계. 시계는 비쌌다. 눈에 띄지 않을 만큼 비싼 종류. 이 골목에는 어울리지 않는 종류.
"뭘 원해요."
"보고 나서 물어보세요."
천천히 말했다. 서두르지 않는 사람의 리듬. 민혁은 그 리듬을 알았다. 상대가 원하는 걸 이미 갖고 있는 사람의 리듬이었다.
봉투를 집었다. 열었다.
사진이었다. 한 장. 흑백은 아니었다. 컬러인데 모래 때문에 전부 황갈색이었다. 지형 사진. 항공 촬영이거나, 아니면 높은 곳에서 찍은 것. 사막이었다. 사막의 어떤 지형. 아무것도 없는 평지에 바위 지형이 솟아 있고, 그 아래 어떤 구조물의 윤곽이 희미했다.
그리고 모서리.
사진의 왼쪽 아래 모서리에, 손으로 그린 작은 도면이 있었다.
민혁의 시선이 그 도면에 닿았다.
멈췄다.
글씨. 도면 옆의 글씨. 손으로 쓴 메모. 작고 조밀한. 한쪽으로 약간 기울어진.
알고 있는 글씨였다.
어릴 때부터 봤다. 식탁 위 메모지에서. 책 여백에서. 낡은 수첩 가득. 작고 조밀하고 한쪽으로 기울어진 아버지의 글씨.
가슴 어딘가에서 무언가가 당겨졌다. 당겨지고, 그 자리에 아무것도 없었다.
민혁은 사진에 손을 뻗지 않았다.
내려다봤다. 테이블 위에 있는 사진을. 황갈색 사막. 바위 지형. 희미한 구조물. 왼쪽 아래 모서리의 도면. 그리고 작은 글씨.
아버지가 이 사막에 있었다.
아버지가 이 사진에 있었다.
아버지는 오 년 전에 빚을 남기고 죽었다.
황금이 찻잔을 들었다. 마시고 내려놓았다. 소리가 없었다. 조용히 움직이는 사람이었다.
"사진은 가져가셔도 됩니다."
민혁은 들고 있던 봉투를 테이블 위에 놓았다. 사진은 안에 있었다. 봉투를 덮었다.
손이 봉투 위에 있었다.
손을 치웠다.
일어서지 않았다.
오길수가 뒷방 입구에서 보고 있었다. 뒷방은 좁았다. 세 사람이 앉기엔 의자가 두 개뿐이었다. 오길수는 서 있었다. 찻잔을 두 손으로 들고. 시선이 민혁에게 가 있었다. 황금을 보지 않았다. 민혁만 봤다.
민혁은 황금을 봤다.
황금은 기다리고 있었다. 급하지 않게.
빗소리가 을지로 뒷골목을 두드렸다. 함석 지붕. 배관 파이프. 오래된 간판. 이 골목의 모든 것이 빗소리를 다르게 받았다.
민혁은 앉아 있었다.
떠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