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두 살이 지나고 나서야 나는 의식(儀式)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 이해했다.
그것은 신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조상을 위한 것도 아니었다. 의식은 목격자를 위한 것이었다. 무언가가 끝나거나 시작될 때, 혼자서는 그 무게를 감당할 수 없으므로 사람들을 모아 증인으로 세우는 것. 그리고 때로는, 한 사람을 영구히 특정한 방식으로 기억하게 만들기 위해—군중이라는 닻을 내려, 그 기억을 세상에 고정시키기 위해.
나는 그 점을 뒤늦게 배웠다.
의식은 내가 무너지는 것을 보기 위한 것이었다.
지금 이것을 쓰는 나는 그날의 소환이 아니다. 나이를 헤아리는 것은 이제 무의미하다—영기(靈氣)를 다루는 자의 몸은 다른 속도로 늙거나, 어떤 경우에는 늙지 않는다. 다만 내가 아는 것은, 그 아이와 지금의 나 사이에 충분한 시간이 흘렀다는 것이다. 강이 돌을 마모시키기에 충분한 시간. 그러나 돌의 형태를 완전히 지우기에는 부족한 시간.
나는 복수의 이야기를 쓰려는 것이 아니다.
복수는 쉽다. 복수에는 방향이 있고 목표가 있고 끝이 있다. 내가 쓰려는 것은 그보다 더 불편한 질문들이다. 힘을 얻은 자는 그 힘의 기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가. 고통으로 단련된 의지는 그 고통을 준 자들과 다른 종류의 의지인가. 나를 가르친 스승의 죄는 그가 전수한 기술 속에 얼마나 깊이 새겨져 있는가.
나는 아직 이 질문들에 답하지 못했다.
아마 끝까지 답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시작하겠다.
소씨 세가(蘇氏世家)의 영기 전수 의식은 매년 동짓날 새벽에 열렸다.
소씨 세가는 대륙의 중원 남동편, 청운령(靑雲嶺) 산맥이 끝나는 자리에 자리 잡은 명문이었다. 세가의 영기 계보는 육백 년을 거슬러 올라갔다—황실의 흥망을 여섯 번 목격하고, 대전란의 잿더미 위에서도 혈맥을 이어온 가문. 소씨 세가의 자제가 태어나면 산파보다 먼저 도착하는 것이 세가의 영기 진단사였다고, 나는 어릴 때 몇 번이고 들었다. 핏줄 속에 영기의 소질이 있는지, 경맥(經脈)의 구조가 수련에 합당한지—그것을 먼저 확인하는 것이, 소씨 세가에서 태어난다는 것의 의미였다.
나는 소씨 세가의 장손이었다.
열두 살의 나는 그 무게를 이해했다. 아니, 이해했다고 생각했다.
동짓날 새벽의 사당(祠堂)은 향 연기와 차가운 공기가 뒤섞여, 숨을 들이쉬면 폐 속에서 두 가지가 싸우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모든 것이 너무 일찍 시작되었다—하늘은 아직 검었고, 마당 가장자리에 세워진 등은 바람에 흔들려 주위 어른들의 얼굴을 간헐적으로 밝혔다. 조부(祖父)가 상석(上席)에 앉아 계셨다. 할아버지의 얼굴은 내가 기억하는 한 항상 조각 같았다—표정을 드러내는 일이 없었고, 기쁨과 염려를 구별하는 것은 눈빛의 아주 미세한 깊이 차이뿐이었다. 그날 새벽, 할아버지의 눈에는 무언가가 있었다.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당시에는 알지 못했다.
이제는 안다. 그것은 두려움이었다.
의식은 세 단계였다. 먼저 가문의 영기 흐름에 몸을 개방하여 조상의 기(氣)를 받아들이는 영납(靈納). 그다음, 수련된 경맥을 통해 그 기를 순환시키고 자신의 것으로 흡수하는 화기(化氣). 마지막으로, 화기한 영기를 가문의 기물(器物)—사당 중앙에 놓인 청동 향로—에 각인시켜, 세가의 계보에 이름을 새기는 각기(刻氣).
열두 해 동안의 수련은 이 세 단계를 위한 것이었다.
나는 영납 단계에서 실패했다. 아니, 실패라는 말은 정확하지 않다. 영납은 성공했다. 그것이 문제였다.
조상의 기가 경맥으로 흘러 들어오는 순간, 나는 그것이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음을 느꼈다. 올바른 순환이라면 영기는 단전(丹田)에서 시작하여 대맥(帶脈)을 따라 순행해야 했다. 그런데 내 몸 속에서 그것은—역류하고 있었다. 역류라는 단어조차 충분하지 않다. 강이 갑자기 상류를 향해 흐르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강이 스스로를 삼키는 것 같았다. 내가 십 년 동안 쌓아올린 모든 수련의 흔적, 경맥 속에 새겨진 모든 운기(運氣)의 패턴이—안에서부터 소각되기 시작했다.
통증은 처음에는 없었다.
그래서 더 무서웠다.
나는 어떤 소리가 나는 것을 들었다. 그것이 내 몸 안에서 나는 소리인지, 아니면 내가 무릎을 꿇으며 사당 바닥을 때린 소리인지, 지금도 구별하지 못한다. 돌바닥의 차가움이 손바닥을 통해 올라왔다. 향로에서 피어오르는 향 연기가 눈에 들어왔다. 어른들의 발소리가 들렸다—처음에는 한 발자국, 그다음에는 여러 발자국이, 그러나 어느 발자국도 내게 가까이 오지 않았다.
그리고 통증이 왔다.
나는 그것을 묘사하려고 여러 번 시도했고, 매번 언어가 부족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타는 것과 찢기는 것의 중간쯤에 있었다고 말하면 절반의 진실이다. 더 정확한 것은 이렇다—그것은 내가 나 자신에게 낯선 존재가 되는 감각이었다. 내 몸이 나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지금까지 나라고 알았던 모든 것이 물처럼 형태를 잃어가는 것.
열두 살의 나는 울지 않았다. 나중에 생각해 보면 그것은 용기가 아니라 충격이었다. 울기 위해서는 최소한 지금 일어나는 일을 이해해야 한다.
나는 이해하지 못했다.
어른들의 발소리. 한 명이 무릎을 꿇고 내 손목을 잡았다—차가운 손가락, 세가의 진단 의원(醫員)이었다. 그가 내 맥(脈)을 짚는 동안 나는 그의 얼굴을 보려 했으나 시야가 흔들렸다. 등불의 빛이 물속에서 보이는 것처럼 일렁였다. 의원이 무언가를 말했다. 그 말이 다른 의원에게, 다른 의원에서 또 다른 사람에게 전달되면서 주위의 공기가 바뀌는 것을 느꼈다. 온기가 물러나고 거리가 생겼다. 나를 중심으로, 조금씩, 어른들이 물러서고 있었다.
소독(疏獨).
나는 그 단어를 몰랐지만 그 감각은 알았다. 위험한 것으로부터 자연히 멀어지는 몸의 언어.
그때 발소리 하나가 달랐다.
빠르지 않았다. 급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느리고 균일했다—마치 이미 어디에 서야 할지 알고 있는 사람처럼. 그 발소리의 주인이 내 앞에 멈춰 섰을 때, 나는 고개를 들었다.
작은아버지였다. 소관철(蘇冠哲).
아버지의 아래 동생이었다. 수련의 소질은 형보다 못했지만 세가의 행정과 인맥을 관리하는 데 있어서는 누구도 그를 따라가지 못한다고 했다. 나는 그를 좋아했다. 어린 나이에 좋아한다는 것은 곧 신뢰한다는 뜻이다—그가 내 어깨를 두드려 준 적이 있었고, 내 수련 성과를 처음으로 칭찬해 준 어른이 그였다.
작은아버지는 내 옆에 무릎을 꿇지 않았다.
그는 서 있었다. 나를 내려다보며, 그러나 잔혹하지 않은 눈으로.
그의 목소리는 사당 전체에 울렸다.
"이것은 세가의 혈통이 처음 마주하는 일이 아닙니다."
나는 그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랐다. 그러나 어른들이 조용해졌다. 고개를 드는 이도 있었고, 고개를 숙이는 이도 있었다. 진단 의원이 작은아버지를 바라보며 입술을 달싹였다가 멈췄다.
"혈기역류(血氣逆流). 이것은 개인의 결함이 아닙니다. 이것은—"
그는 잠시 멈췄다. 그 멈춤은 짧았지만 나는 그 안에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느꼈다. 이제 와서 생각하면 그 멈춤이 전부였다. 결정은 이미 되어 있었고, 말은 이미 준비되어 있었고, 그 멈춤은 준비된 말을 꺼내기 위한 숨 고르기에 불과했다.
"—혈통의 누적 오염입니다. 선조의 기가 어느 지점에서 뒤틀렸음을 의미합니다."
아무도 반박하지 않았다.
나는 아직 사당 바닥에 엎드려 있었다. 향 연기가 내 얼굴 높이에서 천천히 흘렀다. 나는 그것이 거짓말인지 몰랐다. 열두 살은 거짓말과 진단을 구별하지 못한다. 열두 살은 다만, 어른들이 자신을 어떻게 대하는가를 느끼고, 그 대우로 자신의 가치를 추측한다.
어른들은 나를 보지 않고 있었다.
그것이 답이었다.
할아버지는 상석에서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나는 그것도 몰랐다—당시에는. 의식이 끝난 후, 아니, 의식이 무산된 후, 하인이 나를 부축하여 내 방으로 데려갈 때까지 나는 할아버지의 방향을 한 번도 돌아보지 못했다. 돌아볼 힘이 없었던 것인지, 돌아보기가 두려웠던 것인지—그것도 지금도 모른다.
나중에 듣기로, 그날 새벽 의식이 끝난 후 할아버지는 곧장 서재로 들어가 아침 내내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저녁이 되기 전에, 할아버지는 내 방으로 직접 오셨다.
옥패(玉牌) 하나를 손에 들고.
할아버지가 내 손에 옥패를 쥐여 주었을 때 나는 이불 속에 누워 있었다. 얼굴을 벽으로 향한 채. 할아버지는 내 등에 손을 얹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울음이 목에 걸려 있었지만 내지 않았다. 할아버지가 있을 때 우는 것은—나는 그럴 수 없었다. 이유를 설명하기 어렵다. 어쩌면 할아버지 앞에서 무너지면 정말로 돌아올 수 없을 것 같아서였는지 모른다.
할아버지는 오래 앉아 계셨다.
그리고 천천히 일어나며, 낮게 말씀하셨다.
"이것을 잃지 마라."
옥패에 대한 말인지, 다른 무언가에 대한 말인지—나는 묻지 않았다. 할아버지의 발소리가 방문 밖으로 사라진 후, 나는 손 안의 옥패를 쥐고 천장을 바라보았다.
옥패는 따뜻했다. 사람의 체온처럼.
당시의 나는 그것이 그저 오랫동안 할아버지가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날로부터 나는 소씨 세가의 후계자가 아니었다.
아무도 공식적으로 선언하지 않았다. 선언할 필요가 없었다. 세가의 모든 것은 이미 조용히 재배치되었다. 내가 앉던 자리에는 다른 사람이 앉았고, 내가 받던 가르침은 다른 아이에게로 옮아갔다. 나는 지워진 것이 아니었다—지워졌다면 오히려 명확했을 것이다. 나는 보류되었다. 불명예의 증거로, 가끔씩 필요에 의해 환기되는 이름으로, 그러나 일상의 흐름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그것이 어떤 것인지 설명하자면 이렇다.
아침 식사 자리에서 자리가 하나 빈다. 그 빈 자리가 매일 그 자리에 있다. 사람들은 그 빈 자리를 보지 않는 법을 배운다. 그것이 훈련이 아니라 습관이 될 때까지.
열두 살의 나는 그 빈 자리였다.
나는 이 이야기를 승리의 기록으로 쓰지 않겠다고 처음에 말했다. 다시 말해두는 것이 좋겠다. 그 이후에 내가 어떻게 되었는가, 무엇을 배웠는가, 누구를 만났는가—그것들이 뒤따를 것이다. 그러나 독자는 그것들을 읽는 내내 이 사당 바닥을 기억해 주기를 바란다.
향 연기. 차가운 돌. 물러서는 발소리들.
그리고 준비된 말을 꺼내기 위한, 작은아버지의 짧은 침묵.
모든 것은 거기서 시작했다. 내가 강해진 것도, 내가 질문하는 것도, 내가 지금 이것을 쓰는 것도.
그러나 그것이 의미 있는 시작이었는지—고통이 의미를 가질 수 있는지—그것은 내가 아직 대답하지 못한 질문이다.
아마 이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도 대답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계속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