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두 시 반이었다.
김덕수는 배달 가방을 현관 앞에 내려놓으면서 허리를 폈다. 아니, 정확히는 펴려고 했다. 허리가 말을 듣지 않았다. 요즘은 이게 습관이 됐다. 굽히는 건 잘 되는데 펴는 건 시간이 걸린다. 나이 사십에 몸이 먼저 늙는다는 게 이런 건가 싶었다.
계단을 내려가면서 손잡이를 잡았다. 반지하라 계단이 고작 여섯 개인데, 오늘은 그 여섯 개가 유독 길게 느껴졌다. 지하 쪽에서 올라오는 특유의 냄새—습기와 콘크리트와 오래된 음식 냄새가 뒤섞인—가 코를 찔렀다. 2002년부터 맡아온 냄새다. 처음엔 역했는데 이제는 그냥 집 냄새다. 집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문을 조심스럽게 열었다. 안에서 자고 있을 테니까.
방은 십사 평짜리였는데, 살다 보면 십사 평도 세 식구가 쓰면 칠 평이 된다. 안방 겸 거실 겸 부엌 겸 모든 것이 하나인 공간에 아내가 이불을 머리까지 뒤집어쓰고 자고 있었다. 옆에는 딸아이, 소영이가 팔을 벌리고 뻗어 있었다. 일곱 살짜리는 자면서도 공간을 차지한다. 저 나이 때가 인생에서 제일 호쾌한 시절이다.
덕수는 소리를 죽이고 냉장고를 열었다. 뭔가 있을 것 같아서가 아니라 그냥 습관적으로. 역시 별로 없었다. 김치 반 통, 계란 세 개, 두부 한 모. 내일 아침 반찬 걱정은 내일 하면 된다. 오늘 밤 걱정만으로도 이미 충분하다.
찬물을 한 잔 마셨다. 식도를 타고 내려가는 차가운 감각이 유일하게 또렷했다.
주저앉으면 안 된다는 건 알고 있었다. 주저앉으면 못 일어난다. 그런데 몸이 먼저 판단을 내렸다. 무릎이 접히고, 손이 바닥을 짚고, 그대로 옆으로 누웠다. 이불을 꺼낼 힘도 없어서 그냥 바닥에 누웠다.
차갑다. 장판이 차갑다.
괜찮아. 좀 있으면 익숙해져.
덕수는 천장을 바라봤다. 반지하 천장은 낮다. 누워서 손을 뻗으면 닿을 것 같은 높이다. 실제로 닿지는 않지만. 십팔 년 동안 한 번도 실제로 닿아본 적이 없다.
가슴 쪽에서 뭔가 이상한 느낌이 왔다.
처음엔 그냥 체한 건 줄 알았다. 저녁 먹은 것도 아닌데 왜 체하냐 싶긴 했지만, 몸이란 게 논리적으로 돌아가는 물건이 아니다. 그런데 느낌이 달랐다. 체한 건 명치가 묵직한데, 이건 좀 더 왼쪽이었다. 그리고 팔로 번졌다.
아, 이게.
이상하게도 별로 무섭지 않았다. 덕수는 그걸 먼저 의아하게 생각했다. 죽는 게 이렇게 안 무서워도 되는 건가. 뉴스에서 보면 심장마비 겪는 사람들이 다들 극심한 공포를 느낀다던데. 나는 왜 그냥 이렇게 피곤한 거지.
아, 그렇지. 피곤해서 그런가보다. 너무 피곤하면 무서울 에너지도 없다.
가슴이 조여드는 느낌이 강해졌다. 숨이 짧아졌다. 덕수는 손을 들어 가슴을 짚으려다가 팔이 올라가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몸이 말을 안 듣는다. 이런 느낌, 꿈에서는 가끔 있었는데.
소영이가 깨면 안 되는데.
그게 마지막 생각이었다. 소영이가 자다가 아빠 쓰러진 거 보면 얼마나 무서울까. 그 생각. 그리고 그다음엔,
대출이 아직 삼 개월치 남았는데.
억울하다. 삼 개월만 더 버티면 됐는데.
그러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어딘가에서 돼지 잡는 소리가 났다.
아니, 돼지는 아닌데. 뭔가 짐승이 우는 소리. 그리고 사람 목소리들이 그 위에 얹혀 있었다. 말은 들리는데 뭔 말인지 모르겠다. 언어가 다른 건지 의식이 덜 깬 건지.
눈을 뜨려고 했는데 눈꺼풀이 무거웠다. 몸이 전체적으로 작은 느낌이 들었다. 이불이 너무 커서 감기는 느낌? 아니, 이불이 없는데.
덕수는 간신히 눈을 떴다.
하늘이 보였다.
그것도 야외 하늘. 실내가 아니라. 흐린 하늘, 낮게 깔린 구름, 그리고 코로 들어오는 공기가 흙 냄새와 쇠 냄새와 뭔가 탄 냄새가 섞여 있었다. 서울 냄새가 아니었다. 서울은 매연 냄새가 먼저 온다.
일어나려고 팔을 짚었다가 손이 이상하다는 걸 알았다.
작았다.
뭐, 손이?
덕수는 자기 손을 바라봤다. 손가락이 가늘고, 손등에 핏줄도 별로 없고, 마디도 굵지 않았다. 사십 년 동안 짐 들고 배달하고 공사판 다닌 손이 아니었다. 이건 그냥 애 손이었다.
아이의 손.
주변 소리들이 갑자기 선명해졌다. 목소리들.
"…그래서 쟤 겨울 지나면 어떻게 할 거야. 일도 못 하는데."
"폐인 아니야 그냥. 투기도 없는 게 뭘 더 바라."
"마을 사람들이 돌아가면서 밥은 줬잖아. 근데 이제 우리도 형편이…."
"죽을 때 되면 죽는 거지. 어쩌겠어."
덕수는 천천히 상반신을 일으켰다.
마을이 보였다. 아니, 마을이라기보다는 마을이었던 것. 집들이 대여섯 채 있는데 다들 낡아서 지붕이 내려앉은 것도 있었다. 흙길에 수레 자국이 파여 있고, 멀리 산 쪽으로는 뭔가 구조물이 보였다—광산 입구 같은 것. 사방이 산이고 산이고 또 산이었다.
서울이 아니었다.
한국도 아닌 것 같았다.
목소리들이 이쪽을 향하고 있었다. 덕수는 고개를 돌렸다. 다섯 명. 아니, 여섯 명. 서른에서 오십 사이의 사람들로, 옷차림이 전부 낡고 투박했다. 다들 이쪽을 보고 있었다. 이야기를 하다가 덕수가 일어나는 걸 보고 멈춘 것 같았다.
침묵이 흘렀다.
한 여자가 먼저 말했다. "소회, 일어났어?"
소회.
덕수는 그 이름이 자기 것임을 이상하게도 바로 알았다. 이 몸의 이름. 자기 이름은 아닌데 자기 이름처럼 반응이 왔다. 기억처럼. 아니, 기억은 아닌데 기억과 비슷한 어떤 것.
몸에 남아있는 잔상 같은 거겠지.
덕수는 대답하는 대신 주변을 천천히 둘러봤다. 지금 필요한 건 정보다. 목소리가 나오는지도 아직 모르고, 이 몸이 어떤 상태인지도 아직 모른다. 괜히 말 잘못 꺼냈다가 이상한 소리 나오면 곤란하다. 일단 상황 파악부터.
항목 하나. 몸.
아이다. 나이는 열 살에서 열세 살 사이 정도. 팔다리가 가늘고, 뭔가 만성적으로 못 먹은 느낌의 체구다. 손을 꼭 쥐었다 폈다 해봤다. 힘이 거의 없다. 성인 남성인 덕수 기준으로 보면 그냥 젖먹이 수준이다.
항목 둘. 사회적 위치.
방금 저 사람들이 한 말. 일도 못 하는 폐인. 투기도 없는. 죽을 때 되면 죽는다는. 이런 소리가 본인 앞에서 버젓이 나오는 위치라면 답이 나왔다. 가장 낮은 자리다. 버리고 싶은데 아직 버리지 못한 존재. 민폐 취급.
이거 어디서 많이 본 상황이다.
항목 셋. 재산.
없다. 볼 것도 없이 없다. 이런 몸에 이런 마을에서 재산이 있으면 그게 이상한 거지.
항목 넷. 선택지.
덕수는 잠시 생각했다. 아니, 생각이랄 것도 없었다. 이미 뇌가 반사적으로 계산을 하고 있었다. 이십 년 동안 이런 상황을 버텨온 뇌다. 새로운 상황에 처하면 자동으로 돌아간다. 지금 당장 뭘 할 수 있고 뭘 하면 안 되는지.
일어나서 도망치는 건 못한다. 다리가 안 따라올 것 같다.
소리 지르고 난리 치는 건 더 못한다. 아무 도움이 안 된다.
그러면?
덕수는 여자를 바라봤다. 자기한테 말을 건 여자. 표정이 완전히 차갑지는 않았다. 걱정이 없는 건 아닌데 걱정할 여유가 없는 얼굴. 이런 얼굴 덕수는 안다. 자기 엄마 얼굴이 이랬다. 살기 빠듯한 사람 특유의 얼굴이다.
덕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일어났어요. 는 아직 말 못 하고 그냥 몸으로만.
여자가 한숨을 쉬었다. "또 쓰러져 있었네. 이제 낮에 돌아다니지 마. 쓰러지면 누가 일으켜 줄 것 같아?"
나무라는 건지 걱정하는 건지 모를 어조였다. 아마 둘 다겠지. 그리고 둘 다 감당하기 싫어서 저런 투가 나오는 거겠지.
남자 하나가 뒤에서 말했다. "어차피 겨울 되면 뭐 어떻게 되겠지."
어떻게 되겠지. 좋은 방향으로 어떻게 된다는 말이 아닌 건 문맥상 명백했다.
덕수는 그 말을 들으면서 특별한 감정이 올라오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화가 나지 않았다. 억울하지도 않았다. 무섭지도 않았다. 그냥 피곤했다. 그것도 아주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피곤함. 뼈 속에서 나오는 것 같은 피곤함.
생각해보면, 이 느낌 자체는 새롭지 않았다.
새벽에 배달 끝내고 계단 내려가면서 느끼던 그 피곤함이랑 질감이 비슷했다. 상황은 달라도 감각은 비슷하다. 밑바닥이라는 감각. 여기서 더 내려갈 데는 없다는 감각.
가본 데다.
덕수는 두 손을 짚고 천천히 일어났다. 다리가 흔들렸지만 섰다. 선 채로 주변 사람들을 한 번 더 둘러봤다. 다들 이쪽을 보고 있었다. 뭘 할지 보려는 건지, 그냥 봐지는 건지.
덕수는 입을 열었다.
목소리가 나왔다. 이 몸의 목소리. 아직 변성기 전의 가는 목소리. 덕수 자신한텐 낯선데 이 몸은 알고 있는 목소리.
"배고프네요."
사람들이 잠깐 멈췄다.
여자가 표정을 굳혔다가 풀었다가 했다. 뭔가 말하려다가 말았다.
덕수는 기다렸다. 서두를 것 없다. 이런 상황에서 서두르면 진다. 이십 년이 가르쳐준 것 중에 가장 중요한 것 하나가 그거다. 보채지 말 것. 기다릴 것. 상대가 먼저 움직이게 둘 것.
여자가 한숨을 쉬고 돌아섰다. "따라와."
됐다.
오늘 밥은 해결됐다.
덕수는 여자 뒤를 따라 걸으면서 주변을 다시 살폈다. 마을 규모, 집들의 상태, 사람들의 수. 열다섯 명에서 스무 명 사이.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형 지형. 마을 동쪽 끝으로 가면 구조물이 있었는데 나무판자로 입구를 막아둔 것 같았다. 폐광인가. 다들 그쪽을 보지 않으려는 것 같기도 했다.
뭔가 있군. 저쪽에.
나중 일이다. 지금은 밥이 먼저다.
작은 부엌 같은 공간에서 여자가 국 한 그릇을 내밀었다. 멀건 국이었다. 뭐가 들었는지 모를 정도로 묽었다. 고기는 없고 나물 같은 게 조금 떠다니는.
덕수는 받아서 마셨다.
뜨거웠다. 그게 제일 좋았다. 맛은 없어도 뜨겁다는 것 자체가 좋았다. 차가운 바닥에서 일어나 뜨거운 걸 마시는 감각.
이 정도면 일단 살 수 있다.
그릇을 다 비우고 내려놓으면서 덕수는 생각했다. 솔직히 황당하긴 하다. 죽어서 다른 세계에, 그것도 애 몸으로 들어온 게 말이 되냐. 근데 말이 되고 안 되고를 따지는 게 지금 할 일이냐. 지금 할 일은 이 상황에서 버티는 방법을 찾는 거다.
죽었다가 깨어났더니 반지하에서 반지하로 왔네.
아니, 반지하보다는 낫다. 하늘이 보이니까.
여자가 빈 그릇을 가져가면서 말했다. "너 그렇게 멀건하게 있지 말고 뭔가 해. 장로님이 겨울 전에 쓸모 있는 사람 아니면 내보낸다고 했으니까."
내보낸다. 마을에서 내보낸다는 말이겠지. 그 계절에 갈 데 없는 애를 내보내면 어떻게 되는지는 굳이 설명 안 해도 알 수 있었다.
덕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알겠습니다."
공손하게. 눈 마주치면서. 비굴하지 않게 하되 거슬리지도 않게. 이게 기술이다. 이걸 쓸 수 있게 되기까지 십 년이 걸렸다. 머리 숙이는데도 방법이 있다. 그냥 숙이는 사람이랑 숙이는 척 하면서 보는 사람이랑은 다르다.
여자가 잠깐 덕수를 봤다. 뭔가 이상하다는 표정이었다. 전에 이 애가 이런 태도가 아니었나보지. 소회라는 애 원래 어떤 성격이었는지 덕수는 모른다. 기억이 완전히 넘어오지는 않았다. 파편만 있다. 어둡고, 차고, 외로운 파편들.
뭐, 그 정도면 짐작은 간다.
여자는 결국 뭔 말도 안 하고 나갔다.
덕수는 혼자 부엌에 남아 무릎 위에 손을 올려놓고 잠시 앉아 있었다. 창문이 작았다. 거기로 들어오는 빛이 흐릿했다. 밖에서 바람 소리가 났다. 산 바람이라 높은 소리였다.
자, 정리해보자.
이름은 소회. 열두 살쯤. 투기 없음. 투기라는 게 이 세계에서 사람 가치 매기는 기준인 것 같고, 그게 없으면 이렇게 폐인 취급받는 것 같음. 재산 없음. 연줄 없음. 몸도 약함.
있는 건 뭐냐.
있는 건 뭐냐.
덕수는 자기 손을 내려다봤다. 작고 가는 손. 이 손으로 이십 년 동안 뭘 했냐. 박스 날랐다. 배달했다. 공사장 잡부 했다. 편의점 야간 알바 했다. 대출 서류 들고 은행 직원한테 굽신거렸다. 집주인한테 월세 사흘 늦는다고 문자 했다.
그거 다 하면서 배운 게 뭐냐.
사람 읽는 법. 상황 읽는 법. 어디서 고개 숙이고 어디서 버티는지. 누구한테 붙어야 하고 누구를 피해야 하는지. 언제 입 열고 언제 닥쳐야 하는지.
그거면 됐다.
이 세계에서도 사람 사는 건 사람 사는 거다. 강자가 있고 약자가 있고 중간에서 줄 타는 사람이 있을 거다. 덕수는 줄 타는 데는 자신 있다. 아니, 자신 있다기보다 살아남아왔다. 그거면 충분하다.
밖에서 다시 목소리들이 들렸다. 그 남자 목소리.
"오늘 저녁도 결국 걔 밥 한 그릇 나갔네."
"겨울 되면 진짜 결정해야 할 거야."
덕수는 창문으로 들어오는 흐린 빛을 바라봤다.
알겠어. 시간이 많지 않구나.
그래도 오늘 밥은 먹었다.
오늘은 이걸로 된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