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 45.6 Billion Won, Wired at 9:04 A.M.

은행 문이 열렸다.

자동문이 느리게 양옆으로 밀려났고, 그 틈새로 실내의 공기가 흘러나왔다. 냉방 냄새, 소독약 냄새, 그리고 어딘가 모르게 새 지폐 냄새가 섞인 것 같은. 성기훈은 한 발짝 들어서다가 멈췄다. 자동문이 다시 닫히려다가 그의 어깨에 닿고서야 멈추었다.

오전 아홉 시였다.

은행 안은 사람이 별로 없었다. 창구 세 개 중 두 개에만 직원이 앉아 있었고, 대기석에는 노부인 한 명이 번호표를 손에 쥔 채 졸고 있었다. 형광등이 흰 빛으로 대리석 바닥을 가득 채웠다. 기훈은 번호표를 뽑았다. 103번. 현재 대기 번호는 101번이었다.

그는 대기 의자에 앉지 않았다.

발밑을 내려다보았다. 흰색 슬리퍼. 발등에 이름도 없는 가는 고무줄이 한 줄 지나갔다. 어젯밤 병원에서 신은 채로 나온 것이다. 아니, 병원은 아니었다. 병원 같은 곳이었지만 병원이 아니었던 어딘가. 그 이전의 어딘가. 누군가 갈아입으라며 건네준 옷이 지금 그가 입고 있는 것이었다. 소매가 조금 짧았다. 바지 밑단이 발목보다 4센티미터쯤 위에서 끝났다. 셔츠 단추는 세 번째 것이 원래부터 느슨한지 자꾸 풀렸다.

그는 세 번째 단추를 다시 잠갔다.

102번.

창구 직원이 기다리는 노부인을 맞이하는 소리가 들렸다. 조심스럽고 또렷하게 끊어서 말하는 목소리. 기훈은 그쪽을 보지 않았다. 유리창 너머로 거리가 보였다. 아침이라 사람들이 출근하고 있었다. 빠른 걸음, 커피 컵, 이어폰. 아무도 이쪽을 보지 않았다. 누군가 전화를 받으며 걸어가다가 전봇대 모서리를 어깨로 쳤다. 잠깐 찡그렸다가 다시 걸었다.

103번.

기훈은 창구 쪽으로 걸었다.

직원은 이십 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여성이었다. 단정하게 묶은 머리카락, 은행 유니폼, 눈 아래 아주 옅은 화장. 그녀는 기훈을 보고 잠깐, 정말 잠깐 눈이 멈추었다가 곧 영업용 미소를 지었다. 아마 그의 차림새 때문이었을 것이다.

"어서 오세요. 어떻게 도와드릴까요?"

"이체하려고요."

기훈은 주머니에서 종이를 꺼냈다. 어젯밤에 접수처의 볼펜으로 적어온 것이었다. 종이가 아니라 사실 쪽지였다. 아니, 정확히는 박스 옆면에서 뜯어낸 골판지 조각이었다. 그 위에 네 개의 항목이 적혀 있었다.

성북의료원 원무과 계좌번호.

최 씨 쪽 채권 추심회사 계좌번호.

한미녀 계좌번호.

그리고 마지막 한 줄. 숫자들, 그 옆에 'C.S.'

직원은 종이를 받아 들었다. 금액란이 비어 있었다.

"금액은 어떻게 되십니까?"

기훈이 말했다. 직원의 손가락이 키보드 위에서 멈추었다. 그녀는 한 번 그를 올려다보았다가 다시 화면으로 시선을 내렸다. 두드리기 시작했다. 빠르고 정확한 타이핑 소리가 났다.

"신분증 확인 부탁드리겠습니다."

기훈은 신분증을 내밀었다.

그녀는 신분증을 받아서 스캔기에 올렸다. 정보를 확인했다. 화면을 몇 번 클릭했다. 기훈은 그녀가 숫자를 확인하는 순간 어떤 표정을 지을지 보았다. 눈썹이 0.5초 정도 위로 올라갔다가 내려왔다. 그뿐이었다. 그녀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기훈은 그것이 마음에 들었다.

"이체 방식은 일반 이체로 진행해 드릴까요, 아니면——"

"빨리 되는 걸로요."

"즉시 이체로 해드리겠습니다. 수수료가 항목당——"

"상관없어요."

타이핑이 계속되었다. 기훈은 창구 위 유리에 자신의 얼굴이 비치는 것을 보았다. 머리카락이 헝클어져 있었다. 면도를 못 했는지 수염이 올라와 있었다. 눈 아래 무언가 가라앉아 있었다. 피로라고 부르기엔 너무 무겁고, 슬픔이라고 부르기엔 너무 단단한 것이.

"확인하시겠습니까?"

직원이 화면을 돌려주었다. 네 개의 항목. 네 개의 금액. 수신인 이름 칸에 마지막 항목은 그가 적어온 대로 'C.S.'라고 입력되어 있었다.

기훈은 확인했다.

"진행해 주세요."

"영수증 출력해 드릴까요?"

"아니요."

직원이 최종 입력을 했다. 어딘가에서 무언가가 완료되는 소리가, 아니 사실은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돈은 그렇게 이동했다. 조용히, 숫자가 숫자로 옮겨가는 방식으로. 기훈은 그것이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이 많은 것이 이렇게 조용히 옮겨가도 된다는 것이.

"모두 처리되었습니다. 다른 도와드릴 사항 있으실까요?"

"없어요."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십시오."

기훈은 창구에서 물러섰다. 신분증을 다시 주머니에 넣었다. 종이, 아니 골판지 조각은 직원이 돌려주지 않았고, 기훈도 달라고 하지 않았다.

자동문이 열렸다.

밖은 따뜻했다. 아직 오전이었지만 햇볕이 보도블록을 비추고 있었다. 기훈은 은행 건물 그늘에서 한 발짝 벗어나 인도 위에 섰다. 사람들이 그의 옆을 지나쳤다. 출근 시간은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그는 서 있었다.

다리가 어딘가로 가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어머니의 병원. 미녀에게 연락. 아니면 집. 그런데 집이 어디인지, 지금 자신이 어디로 가야 하는 사람인지가 잠깐 비었다. 비었다는 것도 정확하지 않았다. 그냥 지금 이 인도 위에서 한 발짝 어느 쪽으로도 내딛지 않으면, 세상이 잠깐 멈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발밑에 흰 슬리퍼가 있었다.

기훈은 발가락을 구부렸다 폈다.

옆의 편의점에서 냄새가 났다. 뭔가 따뜻한 것의 냄새. 그가 마지막으로 먹은 것이 언제인지 생각해보다가 그만두었다. 생각이 거기까지 가면 그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했고, 그 전에는 가고 싶지 않았다.

편의점 안으로 들어갔다.

냉장고 칸 앞에 섰다가 방향을 틀어 삼각김밥 진열대로 갔다. 참치마요. 제육볶음. 김치참치. 그는 김치참치를 집었다가 다시 내려놓고 참치마요를 들었다. 계산대에서 점원이 바코드를 찍었다. 얼마라고 말해주었다. 기훈은 동전을 꺼내다가 지폐로 냈다. 거스름돈을 받아 주머니에 넣었다.

밖으로 나왔다.

은행 건물 옆에 벤치가 있었다. 그 위에 앉았다. 비닐 포장지를 뜯는 방법이 뒷면에 그림으로 설명되어 있었다. 1, 2, 3. 기훈은 그림 순서대로 뜯었다. 삼각형 모양으로 접힌 밥과 김이 나왔다.

한 입 베어물었다.

씹었다.

참치 냄새가 났다. 짰다. 밥이 조금 눌려 있었다. 기훈은 계속 씹다가 삼켰다. 두 번째 입을 베어물었다.

길 건너편에 부동산 중개소가 있었다. 유리창에 종이들이 빼곡하게 붙어 있었다. 전세, 월세, 매매. 숫자들이 가득했다. 누군가 유리문을 밀고 들어갔다.

참치마요 삼각김밥을 다 먹는 데 열한 분쯤 걸렸다.

기훈은 빈 포장지를 구겼다. 벤치 옆에 쓰레기통이 없었다. 포장지를 주머니에 넣었다. 두 손을 무릎 위에 올렸다.

어딘가에서 비둘기 한 마리가 보도블록 위를 걸어다녔다. 다리를 절고 있었다. 한쪽 발이 뭔가에 다쳤는지 불균형하게 걸었다. 그래도 걸었다. 빵 부스러기를 쪼아먹으며 저쪽 전봇대 쪽으로 불규칙하게 이동했다.

기훈은 비둘기를 보다가 시선을 떨쳤다.

일어서야 했다.

그는 일어섰다. 슬리퍼가 보도블록 위에서 끌렸다. 어머니가 계신 곳은 여기서 버스로 세 정거장이었다. 45번 버스 정류장은 저 모퉁이를 돌면 나왔다.

기훈은 모퉁이 쪽으로 걸었다.

주머니 안에서 거스름돈이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동전들이 서로 부딪히는 얇고 가벼운 소리. 그는 손을 주머니에 넣지 않았다. 그냥 걸었다.

오전 아홉시 열다섯 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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