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관 입구에는 벨 대신 낡은 쇠 고리가 달려 있었다.
양준은 한동안 그것을 바라보았다. 두드릴지 말지를 고민하는 게 아니었다. 그냥 서 있었다. 발이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의사가 없는 것처럼, 몸 전체가 잠시 결정을 포기한 것처럼. 11월의 아침이었고 하늘은 아무런 색깔도 없었다. 콧속으로 찬 공기가 들어올 때마다 어제 먹은 게 없다는 사실이 위장 쪽에서 조용히 신호를 보내왔다.
그는 쇠 고리를 두드렸다.
소리는 예상보다 컸다. 건물 안쪽에서 뭔가 굴러가는 소리가 났고, 잠시 후 문이 열렸다. 흰 셔츠에 카디건을 걸친 오십대 남자가 나왔다. 안경 너머의 눈이 준을 위아래로 훑었다. 판단하는 눈이 아니었다. 그보다 더 나쁜 눈이었다. 이미 다 본 적 있는 것을 다시 확인하는 눈.
"자원봉사 하러 왔습니다."
준은 그렇게 말했다. 목소리가 생각보다 작게 나왔다. 어제 하루 종일 말을 안 했더니 성대가 굳어 있었다.
남자는 대답하지 않고 잠시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옆으로 비켜섰다.
"들어와요."
복지관 안은 형광등 냄새가 났다. 페인트와 소독약이 섞인 냄새, 그리고 그 밑에 깔린 밥 냄새. 아침을 막 치운 것 같은 냄새. 복도는 좁았고 바닥은 낡은 리놀륨이었는데, 한쪽 모서리가 들떠서 지나갈 때마다 작은 소리가 날 것 같았다. 형광등 하나가 깜박였다. 안정기가 나간 것인지, 아니면 원래부터 그런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남자가 먼저 걸으면서 말했다.
"박인수입니다. 여기 원장이에요."
"양준입니다."
"나이가?"
"스물두 살입니다."
"어디서 왔어요?"
준은 잠깐 멈췄다가 대답했다.
"서울에서요."
박인수는 그 대답에 뭔가 더 물으려다가 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복도 끝 작은 사무실로 들어갔다. 책상 위에 서류가 쌓여 있었고, 그 위에 커피잔이 올라가 있었다. 김이 나지 않았다. 마신 지 한참 된 커피였다.
인수는 의자에 앉으면서 서랍을 열어 종이 한 장을 꺼냈다. 자원봉사 신청서였다. 준은 서서 그것을 받아들었다. 펜을 잡았을 때 손가락 끝이 냉기로 뻣뻣했다. 그는 칸들을 채워 나갔다. 이름, 생년월일, 주소.
주소 칸에서 손이 멈췄다.
인수가 그것을 보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준은 마지막으로 살았던 고시원 주소를 썼다. 보름 전에 나온 곳이었다. 지금 주소는 없었다. 정확히 말하면, 지금 준에게는 어젯밤 잔 찜질방 주소가 있었지만 그것을 주소라고 부를 수는 없었다.
서류를 돌려주었다. 인수가 훑어보았다. 특별히 오래 본 곳은 주소 칸이 아니었다. 준이 예상한 것과 달리.
"잘 수 있는 데 있어요?"
준은 대답하지 않았다.
인수가 안경을 벗어 셔츠 자락으로 닦았다. 그러더니 다시 쓰고 말했다.
"창고 정리가 밀려 있어요. 재활 기구들하고 비품들. 당장 오늘부터 시작할 수 있으면 좋겠는데. 밥은 여기서 먹고, 저녁에 문 닫을 때까지 있다 가도 돼요."
그것이 전부였다. 서울에서 왜 왔는지, 왜 하필 이 복지관인지, 어쩌다 주소가 없는 스물두 살이 됐는지. 그 어떤 것도 묻지 않았다.
준은 인수를 바라보았다. 오십대 남자의 얼굴에는 피로가 쌓여 있었다. 깊은 눈가 주름이 사람을 오래 들여다본 사람의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 인수의 눈에는 동정이 없었다. 그것이 오히려 준을 안심시켰다. 동정은 항상 무언가를 요구했다. 감사함이든, 자기 이야기든, 아니면 빨리 나아지는 모습이든.
"하겠습니다."
인수가 일어나면서 말했다.
"따라와요."
창고는 복도 가장 안쪽에 있었다. 잠금장치가 있는 것도 아니었는데, 손잡이를 돌리자 문이 안으로 밀리면서 먼지 냄새가 났다. 형광등을 켜자 불빛이 지직거리며 들어왔다. 접이식 침대 프레임들이 벽에 기대어 있었고, 바퀴 달린 재활 보조기구들이 비닐에 싸인 채 쌓여 있었다. 목발, 보조 벨트, 이름을 알 수 없는 기구들. 구석에 박스들이 있었고, 그 위에 영수증이 흩어져 있었다.
인수가 말했다.
"비품은 크기별로 정리하고, 기구들은 사용 여부에 따라 분류해요. 이름표 붙인 것들은 쓰고 있는 거니까 건드리면 안 되고."
"네."
"뭐가 더 필요하면 알려줘요. 점심은 열두 시."
인수가 나갔다. 발소리가 멀어졌다.
준은 창고 안에 혼자 서 있었다. 어깨에 매고 있던 가방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전 재산이 들어 있는 가방이었다. 부피로 보면 작았다.
그는 박스부터 열었다. 안에 붕대와 장갑들이 있었다. 유통기한을 확인했다. 손이 움직이기 시작하자 생각이 좀 잠잠해졌다. 그것이 일의 좋은 점이었다. 몸을 움직이면 머릿속 다른 것들이 잠시 비켜났다.
얼마나 지났을까. 복도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바퀴 달린 무언가가 굴러가는 소리. 그리고 규칙적이지 않은 발소리.
준은 고개를 들었다.
창고 문이 열린 채였다. 복도 쪽에서 뭔가 잠깐 멈춘 것 같았다. 그는 문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아이가 있었다.
열 살쯤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였다. 보행 보조기를 양손으로 잡고 서 있었는데, 기구 위로 올라온 팔 모양이 여느 아이들과 달랐다. 목이 한쪽으로 약간 기울어져 있었다. 그러나 눈은 달랐다. 눈만큼은 아무것도 불편하지 않은 사람의 눈이었다. 크고 고요하고 무심하게, 준을 바라보고 있었다.
준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아이가 먼저 움직였다. 보조기를 밀며 한 걸음 창고 쪽으로 들어왔다. 그러더니 다른 손으로 주머니를 뒤졌다. 조금 시간이 걸렸다. 손가락이 마음처럼 잘 움직이지 않는 것 같았다. 잠시 후 아이는 무언가를 꺼내 내밀었다.
쌀 과자였다. 반쪽짜리.
준은 그것을 바라보았다.
아이는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팔을 뻗은 채로, 기다렸다. 얼굴에 표정이 없는 게 아니었다. 오히려 표정이 너무 많은데 어느 것도 이름 붙이기 어려운, 그런 얼굴이었다.
준은 쪼그려 앉았다.
아이와 눈높이를 맞추고 나서야 그 눈이 얼마나 오래 사람을 들여다보는 눈인지 느껴졌다. 준은 조용히 과자를 받았다. 아이의 손가락이 그의 손바닥에 잠깐 닿았다가 떨어졌다. 차가운 손이었다. 복지관 안이 그리 따뜻하지 않았다.
"고마워."
준이 말했다.
아이는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러더니 보조기를 돌려 복도 쪽으로 다시 나갔다. 바퀴 소리가 멀어졌다. 규칙적이지 않은 발소리가 그 뒤를 따랐다. 그리고 사라졌다.
준은 쪼그린 채로 잠시 그 자리에 있었다.
손바닥에 쌀 과자가 올려져 있었다. 반쪽. 누군가 이미 먹다 남긴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오히려 뭔가를 만들었다. 전부를 주는 게 아니라 절반을 나누는 것. 계산이 아니라 충동으로 하는 것.
준은 과자를 입에 넣었다. 달았다. 너무 달아서 잠깐 눈을 감았다.
나중에 그는 알게 됐다. 그 아이 이름이 이동하라는 것을. 그리고 동하가 그날 준에게 쌀 과자를 건네기 전에 오랫동안 창고 문 앞에 서서 그를 관찰했다는 것을. 아이들 중 제일 오래된 아이였고, 봉사자가 올 때마다 그렇게 한다는 것도. 그리고 과자를 건넨 건 준이 처음이라는 것도.
그러나 그날 준은 그것을 몰랐다.
그는 그냥, 오래간만에 무언가를 받았다.
점심 시간이 됐을 때 복지관 식당은 이미 시끄러웠다. 아이들 여섯 명이 테이블에 앉아 있었고, 보조 교사들이 돌아다니며 밥그릇을 놓았다. 준은 문 앞에서 잠깐 섰다. 어디 앉아야 하는지 몰라서가 아니라, 그냥 그 장면을 먼저 보아야 할 것 같아서였다.
숟가락 소리. 누군가 웃는 소리. 보조 교사 한 명이 아이에게 뭔가를 설명하는 목소리. 형광등 밑에서 김이 올라오는 국그릇들.
인수가 옆에서 말했다.
"거기 앉아요, 끝에."
준은 테이블 끝자리에 앉았다. 밥그릇이 왔다. 된장국 냄새가 났다. 어제 먹은 게 없었으니까, 몸이 먼저 반응했다. 젓가락을 들었다.
그때 맞은편에서 시선이 느껴졌다.
동하였다. 아까와 같은 눈으로, 준을 보고 있었다. 판단하지 않고. 그냥 보고 있었다.
준은 국을 떴다. 뜨거웠다. 혀를 살짝 데었다.
동하는 계속 봤다.
준이 말했다.
"왜 봐?"
동하는 입을 열었다. 말이 나오는 데 조금 시간이 걸렸다.
"…볼게요."
발음이 또렷하지 않았다. 그러나 의미는 분명했다. 준은 잠깐 동하를 바라보았다가 다시 밥에 시선을 내렸다. 더 이상 뭐라고 할 말이 없었다. 봐도 된다고 할 이유도 없었고, 보지 말라고 할 이유도 없었다.
밥을 먹었다. 뜨겁고 짠 된장국이 위장에 내려갔다. 형광등이 머리 위에서 지직거렸다. 아이들이 떠들었다. 바깥은 흐렸다. 11월이었다.
준은 그 자리에서 밥을 다 먹었다.
나중에 생각해보면, 그것이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