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 The Snow of Cheongsalli Does Not Melt Here

亂世英雄起四方,風雲際會各爭強。

雪原一夢三千里,異代孤魂照古疆。

난세에 영웅이 사방에서 일어나고

풍운이 모여 각기 패권을 다투는구나

설원의 한 꿈이 삼천 리를 건너와

다른 시대의 외로운 혼이 옛 강토를 비추네

총성이 멎었다.

아니, 총성이 멎은 것이 아니었다. 귀가 멎었다. 세상이 멎었다. 발밑의 눈이 피를 빨아들이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어떤 두꺼운 침묵 속에서, 김좌진은 자신이 쓰러지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만주의 눈은 소리가 없다. 그것만은 분명히 기억하고 있었다. 청산리의 골짜기에서 왜병들을 몰아낼 때도, 북로군정서의 형제들이 동상 걸린 발로 설원을 달릴 때도, 눈은 언제나 조용했다. 총알이 공기를 가르고, 포연이 하늘을 물들이고, 사람이 쓰러지는 와중에도 눈은 그저 내렸다. 아무것도 기억하지 않겠다는 듯이. 아무것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듯이.

무릎이 꺾였다. 왼손으로 눈을 짚었다. 손가락 사이로 얼음 결정이 파고드는 냉기를 느끼면서, 그는 생각했다. 등 뒤의 총구가 어느 방향에서 왔는지. 아, 암살이구나. 전쟁터가 아니라. 그 생각이 모욕처럼 느껴졌다. 청산리에서 살아남은 사람이 암살당한다는 것이.

김규식이 보였다. 이범석이 보였다. 수백 개의 얼굴이 보였다. 하얀 두루마기 차림으로 총을 들고 산등성이를 달리던 얼굴들. 발이 얼어터진 채로도 뒤를 돌아보지 않던 눈들.

백야(白冶).

누군가 그를 불렀다. 혹은 부르지 않았다. 그 경계가 무너지는 순간, 세상이 꺼졌다.

그러나 꺼진 것이 아니었다.

뜨거웠다.

그것이 첫 번째 감각이었다. 뜨겁고, 연기 냄새가 났다. 만주의 냉기가 골수까지 박혀 있던 몸이 갑자기 열기 속에 던져진 것처럼, 피부 전체가 동시에 비명을 질렀다. 눈을 떴다.

하늘이 보였다.

하늘은 언제나 하늘이지만 이 하늘은 달랐다. 구름의 색이 달랐다. 공기의 냄새가 달랐다. 무엇보다, 저 멀리서 피어오르는 연기 기둥이 달랐다. 화약 냄새가 아니었다. 초가지붕이 타는 냄새였다. 짚과 황토와 나무가 뒤섞여 타는, 사람이 사는 집이 무너지는 냄새.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아니, 몸이 말을 들었다. 그러나 그것은 자신의 몸이 아니었다.

——이상하다.

그는 군인의 방식으로 생각했다. 감정을 나중으로 미루고 상황을 먼저 읽는 것. 십칠 년의 전장이 새겨놓은 습관이었다.

몸을 일으켰다. 근육의 반응이 미묘하게 달랐다. 중심이 낮았다. 어깨 너비가 달랐다. 오른손을 펼쳐 보았다. 손바닥의 굳은살이 다른 자리에 박혀 있었다. 칼을 쥐던 사람의 손. 총을 쥐던 사람의 손이 아니라.

주변을 살폈다.

관목 숲 안이었다. 그를 중심으로 반경 열 걸음쯤에 나무들이 서 있었고, 그 너머로 먼지가 이는 흙길이 보였다. 길 위에는 사람들이 있었다. 쏟아지듯, 물처럼 흘러가고 있었다. 무거운 짐을 등에 진 늙은이, 아이를 업은 여자, 걸음이 풀린 남자들. 그들의 옷이——

옷이 이상했다.

베와 마로 만든, 누렇고 회색빛이 도는 저고리와 바지. 동여맨 천 신발. 그리고 머리. 상투를 틀거나, 혹은 두건을 쓴 머리들.

그의 심장이 한 박자 멈췄다가 다시 뛰었다.

——언제적 사람들인가.

연기 쪽에서 소리가 왔다. 말발굽 소리. 쇠붙이 부딪치는 소리. 고함. 그리고 비명.

비명은 어떤 시대에도 같은 소리가 난다. 그것만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그는 몸을 낮추고 관목 사이를 뚫고 나갔다.

길은 두 갈래였다. 왼쪽은 완만한 구릉을 따라 북쪽으로 이어졌고, 오른쪽은 내리막을 타고 마을 쪽으로 향했다. 마을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사람들은 왼쪽으로 달아나고 있었고, 오른쪽에서는 기병들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기병.

그는 기병들을 세었다. 열다섯. 아니, 스물. 갑옷을 걸쳤지만 통일된 형식이 아니었다. 가죽을 덧댄 것, 얇은 철판을 이어 붙인 것. 군벌의 사병들이었다. 정규군이 아니었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를——군인은 안다. 정규군은 적어도 명분을 필요로 한다. 군벌의 사병은 그것도 필요 없다.

한 기병이 창으로 달아나려는 노인을 쓰러뜨렸다.

그 광경을 보는 순간, 김좌진의 손이 저절로 허리춤을 향해 움직였다. 권총이 없었다. 물론 없었다. 그는 손을 거두었다. 발밑의 흙을 살폈다. 돌을 살폈다. 나무를 살폈다.

그리고 지형을 살폈다.

군인의 눈은 땅을 읽는다. 산이 어디서 어디로 꺾이는지, 계곡이 어느 쪽으로 좁아지는지, 바람이 어디서 불어오는지. 그것은 배워서 생기는 능력이 아니었다. 살아남으면서 몸에 새겨지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눈이 지금, 한 가지를 포착했다.

마을 동쪽 경계. 낮은 언덕이 반달처럼 휜 곳. 그 밑에 수로가 있었다. 가뭄 탓인지 물은 없고 깊이 파인 도랑만 남아 있었다. 폭이 한 길 반 정도, 깊이는 허리쯤. 기병이 속도를 붙이고 달려오다 그 앞에서 갑자기 멈추거나 돌아서기에는 충분한 장애물이었다.

그리고 그 옆에, 무너진 울타리에 묶여 울부짖고 있는 소 세 마리와 돼지 한 무리가 있었다.

——가능하다.

그는 달렸다.

달리면서 주변의 난민들을 훑었다. 쓸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다. 겁에 질려 움직이지 못하는 사람 말고, 아직 분노가 남아 있는 사람. 분노는 공포보다 유용하다. 공포는 사람을 얼어붙게 만들지만 분노는 사람을 움직이게 만든다.

한 남자가 보였다. 서른 남짓, 쓰러진 노인 곁에서 주먹을 쥐고 서 있었다. 눈물과 분노가 뒤섞인 얼굴.

"거기 당신."

김좌진은 그 남자의 팔을 잡아 끌며 말했다. 말이 나왔다. 입이 이 언어를 알고 있었다. 몸이 기억하는 언어. 자신이 배운 적 없는 언어.

남자가 돌아보았다. 눈이 충혈되어 있었다.

"나를 믿을 필요는 없다. 저 기병들을 몰아내고 싶으면 따라와."

남자는 한 박자 망설였다가 움직였다. 두 번째 남자가, 그 광경을 보고 뒤따랐다. 세 번째도. 한 여자가 괭이를 들고 따라붙었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소를 풀어. 이쪽으로 몰아."

그는 울타리 쪽으로 달리며 소리쳤다. 남자 둘이 울타리의 밧줄을 끊었다. 소들이 놀라며 날뛰었다. 돼지 무리가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기병 한 명이 고개를 돌렸다.

"지금이다."

김좌진이 소의 엉덩이를 힘껏 쳤다. 남자들이 뒤에서 고함을 질렀다. 소 세 마리가 겁에 질려 마을 중심을 향해 돌진했다. 돼지들이 사방으로 흩어지며 울음을 질렀다.

기병들의 말이 반응했다. 군마라도 갑자기 코앞에 날뛰는 가축 무리를 보면 흔들린다. 말은 그렇게 설계된 짐승이 아니다. 두 마리가 뒤로 물러서며 기수를 내동댕이쳤다. 서너 마리가 방향을 틀려다 서로 부딪혔다.

"수로 쪽으로! 몰아!"

그는 앞서 달리며 방향을 잡았다. 가축들이 수로 쪽으로 쏟아졌다. 기병 두 명이 소를 피하려다 수로에 말 발굽이 빠졌다. 말이 쓰러졌다. 기수가 튕겨나갔다.

나머지는 혼란이었다.

전장에서 혼란은 대개 먼저 혼란을 예상한 쪽이 이긴다. 기병들은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파악하지 못했다. 정돈된 약탈 행위가 갑자기 가축 무리와 흙먼지와 비명 속에 묻혀버렸다. 지휘관을 찾아야 했지만 지휘관은 수로 옆에서 진흙투성이가 되어 있었다.

김좌진은 수로에서 가장 가까운 기병을 향해 달려들었다. 쓰러진 기병의 손에서 단창을 빼앗았다. 뒤돌아서 창 자루로 수로에 걸린 말의 뒷다리를 쳤다. 말이 앞으로 쏟아지며 뒤따르는 기병 두 명을 막았다.

총이 없어도 전장은 전장이었다.

칠 분이 지났다. 기병들이 마을에서 빠져나갔다. 전부가 아니었다. 열셋이었다. 나머지 일곱은 수로 주변에 엎어지거나, 말에서 떨어진 충격으로 도망칠 여력이 없었다. 그들을 죽이지 않았다. 무장을 해제하고 묶었다. 포로를 처형하는 것은 그의 방식이 아니었다. 그것은 어느 시대의 방식도 아니어야 했다.

먼지가 가라앉았다.

살아남은 사람들이 하나둘 나타났다. 쓰러진 노인 곁에서, 무너진 집 뒤에서, 관목 숲 속에서. 서른 남짓. 눈이 풀린 얼굴들. 부상자가 여럿이었다. 아이들이 울었다. 한 여인이 이미 식어가는 누군가의 손을 놓지 않고 앉아 있었다.

그는 그 광경을 보았다.

——여기서도 이런 꼴이구나.

만주에서 보았던 얼굴들이었다. 시대만 달랐다.

첫 번째 남자가, 소의 밧줄을 끊었던 남자가 다가왔다. 충혈된 눈이 좀 가라앉아 있었다.

"당신은 누구요?"

김좌진은 대답하기 전에 잠깐 생각했다. 이름. 이 몸에는 이름이 있는가. 있다면 무슨 이름인가.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이 몸의 기억이 있다면 그것은 아직 열리지 않은 방 안에 있는 것 같았다.

"이름은 없소."

거짓말이 아니었다. 지금 이 순간, 그는 정말로 이름이 없었다. 김좌진이라는 이름은 청산리 눈 속에 묻혀 있었다. 이 몸의 이름은 모르고 있었다.

남자가 이상한 눈으로 그를 보았다.

"이름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소?"

"떠돌다 보면 잃어버리는 것들이 있지."

남자는 더 묻지 않았다. 그들에게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은 이름보다 물이었고, 물보다 부상자를 돌볼 손이었다. 김좌진은 남자들에게 물 있는 곳을 물어보고, 부상의 경중을 살폈다. 천 조각을 찢어 피 흘리는 상처를 묶었다. 이런 일은 전장에서 수백 번 했다. 손이 기억하고 있었다.

해가 기울었다.

기울어가는 빛 속에서 마을의 윤곽이 드러났다. 반쯤 무너진 담장, 불에 탄 집 세 채, 마당에 흩어진 항아리 파편들. 곡식을 채워놓았던 창고가 비어 있었다. 기병들이 오기 전에 이미 비워놓았거나, 기병들이 실어갔거나. 어느 쪽이든 이제 이 사람들의 겨울은 무거워질 것이었다.

그는 마을 어귀의 돌 위에 앉았다.

손을 내려다보았다.

손등. 손금. 굳은살의 자리. 손톱 밑에 낀 흙.

이것은 자신의 손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 손이 방금 전에 사람을 살렸다. 그렇다면 이 손은 지금 이 순간만큼은 자신의 손이었다.

밤이 왔다.

만주의 밤하늘과 이 땅의 밤하늘 중 어느 쪽이 별이 더 많은지, 그는 비교할 여유가 없었다. 다만 별이 있다는 것만은 같았다. 어디서나 별은 있었다. 그것이 이상하게 위로가 되기도 하고, 이상하게 슬프기도 했다.

멀리서 남자의 곡소리가 들렸다. 아까 여인이 손을 놓지 않던 그 사람이 결국 가버린 모양이었다.

그는 고개를 들어 별을 보았다.

그리고 낮은 목소리로, 이름을 불렀다.

이범석. 이장녕. 최해. 박영희. 김동삼.

만주 설원에 묻어두고 온 이름들. 청산리 골짜기에서 눈 속에 쓰러진 이름들. 독립군의 깃발 아래서 총을 들었다가 나라도 이름도 없이 사라진 이름들.

나는 살아있다. 어떤 모습으로든. 어느 시대에든.

별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군인이었다. 군인은 대답이 없어도 다음 날 아침을 준비한다. 그것이 군인과 죽은 자의 차이였다.

그는 손가락에 묻은 흙을 털었다. 일어났다. 부상자 중에 아직 열이 내리지 않은 아이를 살피러 걸어갔다. 모닥불 옆에 쪼그리고 앉아 이마를 짚었다. 아이의 체온이 손바닥을 통해 전해졌다. 뜨거웠다.

이 시대의 이름도, 언어도, 지도도 없었다.

그러나 사람이 쓰러지면 일으켜야 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것으로 지금은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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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 The Snow of Cheongsalli Does Not Melt Here — 청산리의 봉황, 삼국을 날다 | GenNove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