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류는 A4 두 장이었다.
어머니의 손이 떨리고 있었다. 재민은 그것을 보았다. 팔꿈치 아래서부터 손끝까지, 눈에 띄지 않을 만큼 미세하게, 그러나 분명히. 어머니는 서류를 내려다보고 있었고 변호사는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고 재민은 소파 끝에 앉아 자신의 무릎 위에 놓인 두 손을 바라보고 있었다.
사무실은 광화문 어느 빌딩의 열두 번째 층이었다. 창밖으로 11월의 하늘이 회색으로 낮게 깔려 있었다. 책상 위에는 가죽 장정 파일이 두 개 있었고 그 사이에 도장 받침대와 인주가 놓여 있었다. 인주는 선명한 빨간색이었다. 재민은 그 색깔을 기억하게 될 것이었다.
변호사의 이름은 강태훈이었다. 명함을 받았을 때 재민은 한 번 읽고 주머니에 넣었다. 사십대 중반, 회색 정장, 손목에 금색 시계.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어머니를 향해서만 말했다. 재민이 그 자리에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처럼.
"표준 합의서입니다. 지급 조건과 부제소 조항, 비밀 유지 조항이 포함되어 있고요."
어머니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서명 대신 무인으로도 됩니다."
사무실에서는 가죽 냄새가 났다. 그리고 그 아래로, 커피 냄새. 재민 앞에는 아무도 커피를 내어놓지 않았다.
창문 옆 장식장에는 상패가 다섯 개 있었다. 재민은 하나씩 읽었다. 법무부장관 표창, 서울지방변호사회 우수회원, 대한상사중재원. 나머지 두 개는 멀어서 읽히지 않았다. 그는 읽으려다가 멈췄다.
어머니가 인주에 오른손 검지를 눌렀다.
소리는 없었다. 종이 위에 지문이 찍히는 것은 소리가 나지 않는 일이었다. 재민은 그 사실을 그날 처음 알았다.
변호사가 서류를 집어 들어 확인했다. "네, 됐습니다." 그는 한 장을 어머니 쪽으로 밀었다. "사본 보관하시고, 지급은 다음 달 초로 알고 계시면 됩니다."
어머니는 사본을 받아 접었다. 두 번, 정확하게. 핸드백에 넣었다.
재민은 자리에서 일어서지 않았다. 어머니가 일어서는 것을 보았다. 변호사가 일어서는 것을 보았다. 두 사람이 악수하는 것을 보았다.
"번거로우셨을 텐데, 이것으로 마무리됐으니 이제 추스르시고."
어머니가 말했다. "감사합니다."
재민은 그 말을 들었다.
복도로 나오자 어머니가 재민의 팔을 잡았다.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면서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버튼 위의 숫자가 12에서 점점 내려가는 동안 재민은 천장을 보았다. 형광등. 하나가 아주 미세하게 깜빡이고 있었다.
1층 로비로 나왔을 때 바람이 들어왔다. 재민은 멈춰 서지 않았다.
그는 열일곱 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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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접관의 이름은 이수진이었다. 명함 앞면에 한강그룹 인재개발팀 수석매니저라고 적혀 있었다. 재민은 명함을 두 손으로 받아 한 번 읽고 테이블 오른쪽 모서리 근처에 가지런히 놓았다.
면접실은 한강타워 서른세 번째 층이었다. 창밖으로 한강이 보였다. 11월이었다. 강물은 납빛이었다.
"지원 동기 말씀해 주시겠어요?"
"네." 재민은 잠시도 뜸을 들이지 않았다. "식품 유통 분야에서 실질적인 구조 변화를 만들 수 있는 조직에서 일하고 싶었습니다. 규모가 있어야 의미 있는 변화가 가능하다고 판단했고, 한강그룹은 그 규모와 실행력을 동시에 갖춘 곳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수진은 이력서를 내려다보았다. 학점, 어학 점수, 인턴 경험, 수상 이력. 흠잡을 곳이 없는 문서였다. 그녀는 그것을 알고 있었고 재민도 그녀가 알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공백 기간이 있네요. 입사 후 3년."
"아버지 병간호를 했습니다."
이수진이 잠시 펜을 멈췄다. "아, 그러셨군요."
"오래 걸리진 않았습니다."
대화는 다시 흘렀다. 직무 역량, 팀 적응력, 장기 비전. 재민은 각 질문에 정확한 분량으로 답했다. 너무 짧지 않게, 너무 길지 않게. 그가 말하는 동안 이수진은 메모를 했고 재민은 그녀가 무엇을 받아 적는지 거꾸로 읽을 수 있었다. 소통 능력 우수, 침착, 논리적.
"한강그룹에 대해 부정적으로 보시는 부분은 없나요? 솔직하게 말씀해 주셔도 됩니다."
재민은 천장을 향해 시선을 한 번 올렸다가 내렸다. 생각하는 표정이었다. "크고 오래된 조직이 갖는 관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새로운 사업부에 지원한 것도 그 부분에서 더 유연하게 움직일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단점이 아니라 제가 기여할 수 있는 지점이라고 봤습니다."
이수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만족했다. 재민은 그것을 보았다.
면접 종료 후 이수진이 악수를 청했다. 재민은 일어서서 두 손으로 잡았다. 정확한 악력으로. 시선을 유지하면서.
"결과는 이주 안으로 연락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동안 재민은 창밖을 보았다. 강이 보였다. 이 건물에서는 어느 층에서 보아도 강이 보일 것 같았다. 그는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는 소리를 들으면서 한 번 더 강을 보았다. 그리고 들어갔다.
로비로 내려오는 사십여 초 동안 그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생각이 있었지만 그것이 얼굴로 올라오지 않았다.
1층 유리문이 열렸다. 바람이 들어왔다. 재민은 멈추지 않았다.
그는 스물여덟 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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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박형수였다.
그 이름은 서류에 한 번, 사망진단서에 한 번, 그리고 합의서에 한 번 적혀 있었다. 합의서에는 피해자라고 되어 있었다. 재민은 그 단어를 읽을 때마다 잠시 문장이 끊어지는 것을 느꼈는데 그 이유를 오랫동안 설명하지 못했다.
아버지는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퇴근길이었다. 2월이었고 도로에는 눈이 쌓여 있었다.
가해 차량은 한강그룹 회장 아들 소유의 차량이었다. 운전자는 한태준, 당시 스물두 살. 혈중알코올농도 수치는 나중에 알았고, 재민이 그것을 확인하는 데는 또 시간이 걸렸다. 사건은 조용히 마무리됐다. 변호사가 왔고 서류가 왔고 어머니가 무인을 찍었다.
한태준은 사과하지 않았다.
재민은 그 사실을 오래 기억했다. 분노로 기억한 것은 처음 몇 년이었다. 그 이후에는 분노가 아니라 다른 형태로 기억했는데 그것을 무엇이라고 불러야 하는지는 알고 있었지만 부르지 않았다.
사무실 책상 서랍 안쪽에 교통카드 하나가 있었다. 재민의 아버지가 그날 쓰던 카드였다. 어머니가 주었다. 보관해라, 라고만 했다. 이유는 말하지 않았다. 재민도 묻지 않았다.
면접 결과는 열흘 후에 왔다. 최종 합격.
재민은 합격 통보 이메일을 읽고 노트북을 닫았다. 그리고 서랍에서 교통카드를 꺼내 잠시 손 안에 쥐었다. 카드는 파란색이었고 모서리가 약간 닳아 있었다.
그는 다시 서랍에 넣었다.
입사일까지는 삼 주가 남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