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초에 여와씨가 하늘을 깁다가 돌 하나를 남겼다.
쓰다 남긴 게 아니라, 쓸 수 없어서 남긴 거였다. 3만 6501개를 다듬었는데 딱 하나가 치수가 맞지 않았다. 너무 크지도 않고 너무 작지도 않았다. 그냥 맞지 않았다. 여와씨는 그 돌을 청경봉 아래 내던져두고 하늘 수선을 마쳤다. 완성된 하늘 아래 버려진 돌은 수천 년을 굴렀다.
그러다 어느 가을, 서울 한복판에 떨어졌다.
영국원 타워 37층 펜트하우스와 지하 1층 반지하 사이 어딘가에.
부동산 광고는 이렇게 썼다.
영국원(榮國苑) 타워 — 서울 강남구 도산대로 위치, 지상 42층. 세대별 전용 엘리베이터 키카드 시스템. 37층 이상 펜트하우스 라인: 조망, 프라이버시, 그리고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들. 중층부(18-36층): 전략적 인접성. 서비스층 및 관리동. 지하 1층 일부: 계약에 따라 용도 변경 가능.
건물을 처음 설계한 건축가는 지금 다른 나라에 있다. 그가 이 건물에 새겨넣은 철학은 말로 한 적이 없다. 콘크리트가 말했다.
예를 들어 엘리베이터는 세 종류다. 펜트하우스 전용 엘리베이터는 37층 버튼만 있다. 키카드를 대야 열리는데, 그 키카드는 태어날 때부터 갖고 있거나 영원히 갖지 못하거나, 둘 중 하나다. 중층부 엘리베이터는 18층에서 36층까지 선다. 역시 키카드. 그리고 서비스 엘리베이터가 있다. 모든 층에 서는 대신 냄새가 다르다. 이 엘리베이터는 키카드가 없어도 탈 수 있다. 단, 짐을 들고 있는 것처럼 보일 때만.
계단은 비상구 옆에 있다. 비상시와 가난할 때 쓴다.
냄새에 대해서라면 이 건물은 층마다 다른 향수를 뿌린 것처럼 다르다. 펜트하우스 복도는 샌달우드와 희박한 공기, 오래된 돈이 산화하는 냄새가 섞인다. 중층부는 좀 더 인간적이다. 고급 섬유유연제, 배달음식의 잔향, 누군가가 최근에 야근했다는 증거들. 서비스층으로 내려가면 산업용 세제, 남의 음식 냄새, 사람이 살도록 설계되지 않은 공간이 사람의 온기를 억지로 품고 있는 냄새. 그 냄새에는 이름이 없다. 이 건물에 사는 사람 중 반 이상은 그 냄새를 한 번도 맡아본 적이 없다.
오후 두 시 삼십칠 분.
펜트하우스 거실 한쪽, 창가 쪽에 놓인 침상 위에 가보옥이 누워 있다.
침상의 가격은 나중에 얘기하기로 하자. 지금은 그냥 그 위에 누군가가 누워 있다는 사실만 기록한다. 오후 햇빛이 통유리 너머로 길게 들어와 그의 목 위 옥 도장에 닿는다. 도장은 엄지손가락 두 마디쯤 되는 크기로, 짙은 초록빛 옥에 금테를 둘렀다. 끈은 붉은 비단이다. 그것이 아기 때부터 그의 목에 걸려 있었다는 전설은 가씨 가문에서 사실로 통용된다. 왜냐하면 가모 여사가 그렇게 말하기 때문이다.
보옥은 자고 있다. 아니, 자고 있는 척하고 있다. 차이는 있다. 자는 척하는 사람의 눈꺼풀은 아주 가끔 너무 꽉 다물어진다.
햇빛이 이동한다. 옥 도장에서 그의 광대뼈 위로.
그는 눈을 뜨지 않는다.
방 안에 소리가 있다. 에어컨 소리도, 밖에서 차 지나가는 소리도 아니다. 누군가가 아주 조용히 들어왔다 아주 조용히 나가는 소리다. 보옥은 그 소리가 무엇인지 안다. 아까 주스 잔이 비었다. 누군가가 채워놓고 나갔다. 확인하지 않아도 안다. 항상 그래왔으니까.
잠시 후, 그는 눈을 뜬다.
천장을 본다. 천장은 3.8미터 높이다. 이 천장을 평생 봐왔는데도, 어떤 날은 처음 보는 것처럼 낯설다. 오늘이 그런 날이다. 그는 한동안 천장을 보다가 옆 탁자 위 주스 잔으로 손을 뻗는다.
차갑다. 방금 갈아 만든 것이다.
마신다. 내려놓는다.
그는 살면서 한 번도 스스로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른 적이 없다. 이것은 비유가 아니다. 그가 엘리베이터에 오르면 항상 누군가가 먼저 버튼을 눌렀다. 가모의 손이거나, 집사의 손이거나, 드물게는 어머니의 손이었다. 그는 그 사실을 부끄럽게 여기지도, 당연하게 여기지도 않는다. 그냥 그것이 그의 삶의 물리 법칙이다. 누르지 않아도 문이 열린다. 누르지 않아도 층이 바뀐다. 그는 그저 올라가거나 내려간다.
문제는, 어느 층에 내려야 할지를 그는 아직 모른다는 것이다.
목에서 옥 도장을 들어 손바닥에 올려놓는다. 무겁다. 항상 이렇게 무거웠나. 아니면 오늘만 이런가. 그는 도장 표면을 엄지로 문지른다. 표면에는 네 글자가 새겨져 있는데, 어릴 때부터 봐와서 이제 눈을 감아도 보인다.
莫失莫忘 — 잃지도 말고 잊지도 말라.
그는 도장을 다시 목에 건다.
창밖으로 서울이 보인다. 아래쪽으로, 한참 아래쪽으로, 손바닥만 한 작은 것들이 움직인다. 차들, 사람들, 아무것도 아닌 것들. 이 창문에서 보면 모두 같은 크기다. 이 창문에서 보면 모두 같은 속도로 움직인다.
물론 실제로는 아니지만.
건물 어딘가, 37층 아래 어딘가, 그가 한 번도 내려가보지 않은 층들 어딘가에, 오늘 처음으로 누군가가 이 건물의 서비스 입구를 통해 들어오고 있다. 그 사람은 편의점에서 출력한 이력서를 들고 있다. 그리고 낡은 파일 폴더를. 그리고 폐가 어딘지 아는 사람 특유의 걸음걸이로 계단 앞에 서 있다.
보옥은 그 사실을 모른다.
그는 다시 천장을 본다. 창가의 오후 빛이 길어진다. 옥 도장이 다시 빛을 잡는다.
하늘에서 떨어진 돌은 지금 이 건물의 어딘가에 있다. 정확히 어느 층인지는 이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도 불분명할 것이다. 건물의 공식 도면에는 나와 있지 않다. 건축가도 몰랐다. 아마 여와씨도 몰랐을 것이다.
그냥 어딘가에, 콘크리트와 냄새와 키카드와 층수 사이 어딘가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