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레바퀴 소리였다.
삐걱, 하는 소리가 돌바닥을 긁으며 가까워졌다가 멀어졌다. 임철은 그 소리를 들으며 눈을 뜨기 전에 먼저 손가락을 움직였다. 손가락이 움직였다. 그다음은 발목. 발목도 움직였다. 그는 천장을 찾아 시선을 올렸으나 천장이 없었다. 하늘이 있었다. 납빛 하늘이었다.
낯선 하늘이었다.
그는 일어나지 않았다. 등 아래로 돌바닥의 냉기가 올라왔다. 바닥은 축축했다. 이른 아침이거나 밤새 비가 내렸거나, 혹은 둘 다이거나. 임철은 그 냉기가 등뼈를 타고 올라오는 동안 주변의 소리를 하나씩 분류했다. 수레바퀴. 닭 울음소리, 멀리서. 누군가 나무를 패는 소리. 화로에 불을 피우는 냄새. 삭힌 채소와 연기와 사람의 체취가 뒤섞인, 저잣거리의 냄새.
시장이었다.
그는 천천히 상체를 일으켰다. 어지럼증은 없었다. 뒤통수에 통증이 있었다. 손으로 만져보니 머리카락이 엉겨 있었고 그 아래 두피가 욱신거렸다. 상처는 오래된 것이었다. 하루나 이틀. 어쩌면 더. 그는 골목의 한쪽 끝을 바라봤다가 다른 쪽 끝을 바라봤다. 양쪽 다 열려 있었다. 사람이 없었다. 지키는 자가 없었다.
그것이 가장 이상했다.
골목은 좁았다. 포목전과 기름집 사이에 낀 틈 같은 골목이었다. 벽돌 틈에 이끼가 끼어 있었고 바닥에는 지난 장날의 찌꺼기들이 썩어가고 있었다. 누가 그를 여기 버려두었다. 설명도 없이, 경비도 없이, 그냥 버려두었다. 임철은 그 사실을 반추하며 천천히 양손을 펼쳐보았다. 열 개의 손가락이 모두 있었다. 관절마다 두껍게 굳은살이 박혀 있었고, 손등의 피부는 거칠고 건조했다. 이 손이 무엇과 싸워왔는지는 손을 보면 알 수 있었다.
그는 손을 쥐었다가 폈다. 쥐었다가 폈다.
일어섰다.
무릎이 뻣뻣했다. 허리도 뻣뻣했다. 그러나 넘어지지 않았다. 그는 벽에 기대지 않고 서서 자신의 몸을 점검했다. 옷은 낡았으나 그의 것이 아니었다. 삼베로 지은 평민의 옷이었다. 품이 조금 작아서 어깨 쪽이 당겼다. 발에는 짚신이 신겨져 있었는데 한쪽이 끈이 끊어져 있었다. 주머니를 뒤졌다. 동전 두 닢. 그것뿐이었다.
그는 동전을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바라봤다. 동전의 연호를 읽었다. 눈을 가늘게 뜨고 다시 읽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긴 숨을 내쉬었다. 입술이 약간 벌어졌다가 다시 닫혔다. 그것이 전부였다. 그는 동전을 다시 주머니에 넣었다.
연호가 바뀌어 있었다. 십 년이었다.
골목을 나왔다. 시장은 깨어나는 중이었다. 좌판을 펼치는 상인들, 물동이를 이고 걷는 여자들, 짐을 잔뜩 실은 나귀를 끌고 가는 노인. 임철은 그 사이를 걸었다. 아무도 그를 보지 않았다. 남루한 차림의 낯선 사내는 이 시장에서 눈에 띌 이유가 없었다. 그것도 의도된 것일 수 있었다. 그는 그 가능성을 일단 보류했다.
우물을 찾았다.
시장 한복판에 공동 우물이 있었다. 두레박을 내려 물을 길어 올렸다. 물이 찰랑거리며 올라왔다. 그는 물을 마시기 전에 두레박 수면을 들여다봤다. 잔물결이 잦아들기를 기다렸다. 잔물결이 가라앉고 납빛 하늘이 비치고, 그 아래 한 사내의 얼굴이 나타났다.
임철은 그 얼굴을 봤다.
서른두 살에 들어갔다. 지금은 마흔둘이었다. 수면의 얼굴은 그가 기억하는 얼굴이 아니었다. 이마에 주름이 새겨져 있었다. 광대뼈가 더 날카로웠다. 턱수염이 길었고 입술은 얇았다. 눈은 같았다. 눈만은 정확히 같았다. 깊고 건조하고 아무것도 반사하지 않는 눈.
그는 두레박의 물을 마셨다. 차가운 물이 식도를 타고 내려갔다. 두 모금, 세 모금. 그리고 멈췄다. 물을 쏟아버리지 않고 내려놓았다. 얼굴에는 뿌리지 않았다. 눈물도 없었다. 눈물은 어느 해에 말라버렸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아마 꽤 이른 해였을 것이다.
우물 옆 빨래터에서 여자가 빨래를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탁, 탁, 탁. 규칙적인 소리였다. 저 너머 어디선가 아이가 우는 소리. 기름을 두른 팬에서 무언가 지글거리는 소리와 냄새가 한꺼번에 왔다. 임철의 위가 반응했으나 그는 즉시 그것을 무시했다. 동전이 두 닢이었다. 쓸 곳을 먼저 정해야 했다.
시장을 천천히 걸으며 간판들을 읽었다. 약방, 포목전, 두부집, 주막. 떡방앗간 앞에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그들이 나누는 말소리가 조각조각 들렸다. 어느 마을에 수해가 났다는 말. 어느 관아의 세금이 올랐다는 말. 그리고 어디선가 의적들이 나타났다는 말. 수해, 세금, 의적. 그는 그 세 단어의 배열이 말해주는 것을 십 년 전보다 훨씬 빠르게 읽어냈다.
세상이 변했다기보다 세상이 더 심해져 있었다.
주막 앞을 지날 때 안에서 고성이 새어나왔다. 술 취한 목소리였다. 아직 아침나절인데 술 취한 목소리였다. 임철은 걸음을 늦추지 않았다. 주막 처마 아래 걸린 깃발이 바람에 펄럭였다. 낡고 색이 바랬다. 언제 새로 달았는지 알 수 없는 깃발이었다. 그런 깃발들이 도처에 있었다. 낡은 것들 위에 새것이 덮이지 않은 채 낡아가고 있었다.
그는 시장의 동쪽 끝까지 걸어갔다. 그쪽에서 사람들이 더 많이 오가고 있었다. 어디서 오는가를 보면 어디로 이어지는 길인지 알 수 있었다. 관도였다. 북쪽에서 내려오는 관도. 그는 잠시 그 길의 방향을 눈으로 쫓았다. 먼지가 이는 방향, 짐수레가 오는 방향, 사람들이 더 자주 시선을 주는 방향.
북쪽에 도읍이 있었다.
임철은 그 방향을 오래 보지 않았다. 한 번 확인했으면 충분했다. 그는 돌아서서 시장 안으로 다시 들어갔다. 길을 물어보는 사람처럼 두리번거리지 않았다. 도움을 구하는 사람처럼 누군가의 눈을 잡으려 하지도 않았다. 그는 자신의 이름을 말하지 않았다. 어디서 왔냐는 질문을 받지 않았고, 받더라도 대답하지 않을 것이었다.
그 이름은 지금 이 시장의 어떤 귀에도 들어가서는 안 되는 이름이었다.
두부집 앞을 지날 때 주인 여자가 두부를 자르다 눈을 들어 그를 봤다. 잠깐이었다. 임철도 그 눈을 받았다가 놓아줬다. 아무 일도 없었다. 여자는 다시 두부를 잘랐다. 칼이 나무판에 닿는 소리가 짧고 단호했다.
그는 계속 걸었다.
동전 두 닢을 처음으로 쓴 것은 시장 끝자락의 국밥집에서였다. 국밥 한 그릇. 그는 문 쪽을 보며 앉았다. 국밥을 받아 젓가락을 들기 전에 국물 위에 뜬 기름을 한 번 봤다. 그리고 먹었다.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일정한 속도로 먹었다. 남기지 않았다. 그릇을 밀어놓고 국밥집을 나왔다.
주인 노인이 등 뒤에서 말했다.
"어디서 오시오?"
임철은 대답하지 않았다. 노인이 다시 물을 만큼 기다리지 않고 걸었다.
그렇게 그는 그날의 첫 식사를 마치고 관도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발의 짚신 끈이 풀어져 있었다. 그는 걸음을 멈추고 쭈그려 앉아 끊어진 끈을 묶었다. 제대로 묶이지 않는 끈이었다. 두 번 묶었다. 그래도 헐거웠다. 세 번째 묶으려는데 그냥 뒀다. 어차피 오래 신을 짚신이 아니었다.
그는 일어서서 다시 걸었다.
관도 위로 나섰다. 바람이 북쪽에서 내려왔다. 먼지와 함께 무언가의 냄새가 실려 왔다. 임철은 그 냄새에 잠깐 코를 세웠다가 내렸다. 지방마다 냄새가 달랐다.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할지, 그가 버려진 이 장소는 어디에 위치한 것인지. 그 좌표가 천천히 맞춰지고 있었다.
수레 한 대가 그를 추월해 지나갔다. 짚단을 잔뜩 실은 수레였다. 바퀴가 굵은 돌을 밟으며 삐걱거렸다. 아침에 그를 깨운 소리와 같은 소리였다. 임철은 그 수레의 뒤를 잠깐 봤다. 짚단 사이에 작은 참새 한 마리가 끼어 있다가 수레가 기우뚱하자 날아올랐다. 참새는 회색 하늘로 수직 상승하다가 남쪽으로 방향을 꺾어 사라졌다.
임철은 북쪽을 향해 걸었다.
그의 딸이 어디 있는지 그는 알지 못했다. 지금은 알지 않기로 했다. 딸을 찾는 일은 그 앞에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순서가 있었다. 그 순서를 바꾸면 안 됐다. 딸을 먼저 찾으면 딸이 위험해질 수 있었다. 그는 그 위험을 계산했고 그 계산 끝에 딸의 이름을 마음 깊은 곳에 잠가두었다. 잠금장치는 열 개의 굳은살 박힌 손가락보다 단단했다.
관도가 넓어지며 앞에 갈림길이 나타났다. 나무로 만든 이정표가 서 있었다. 글자가 비에 씻겨 흐릿했다. 임철은 이정표 앞에 서서 글자를 읽었다. 모두 읽었다. 그리고 왼쪽 길을 택했다.
왜냐하면 왼쪽 길에서 더 많은 사람들이 내려오고 있었으므로.
사람이 많이 지나온 길은 무언가가 있는 길이었다. 임철은 지금 당장 목적지가 없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목적지는 있었으나 그 목적지에 이르기 위한 경로가 없었다. 경로를 만들기 위해서는 정보가 필요했다. 정보를 얻으려면 사람이 있는 곳으로 가야 했다. 사람이 있으면 말이 있고, 말이 있으면 소문이 있고, 소문 안에는 반드시 진실의 뼈대가 들어 있었다.
그는 걸었다.
납빛 하늘 아래 관도는 구불구불 이어졌다. 길 양쪽으로 늦가을의 논이 펼쳐져 있었다. 벼를 거둔 자리에 밑동만 남아 있었다. 거둔 것과 남겨진 것, 임철은 그 사이를 걷고 있었다. 바람이 불었다. 짚신 끈이 다시 풀렸다. 그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멀리 마을의 윤곽이 보이기 시작했다. 연기가 올랐다. 사람 사는 냄새가 왔다.
임철은 계속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