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서랍에는 자물쇠가 두 개 달려 있었다.
하나는 쇠로 만든 것이었고, 하나는 그보다 더 단단한 것이었다. 하윤은 열두 해 동안 그것을 알고 있었다. 아버지가 서랍을 여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아버지가 그 앞에서 멈추는 것을 본 적이 있었다. 잠깐, 숨을 고르는 것처럼. 그러다 돌아서는 것을.
마을은 제국의 변방에 있었다. 산이 사방을 막고, 가을이면 안개가 사흘씩 걷히지 않았다. 사람들은 그것을 날씨라고 불렀지만, 하윤은 어릴 때부터 그것이 산의 버릇이라고 생각했다. 잊지 않으려는 버릇. 무언가를 계속 품고 있으려는 것.
병수는 마을의 기록관이었다. 출생과 사망을 장부에 옮기는 일을 했다. 그의 글씨는 단정했다. 감정이 없는 것이 아니라, 감정이 들어설 자리를 미리 지워버린 것 같은 글씨였다. 하윤은 아버지가 장부를 쓰는 모습을 자주 보았다. 붓을 움직이는 방식, 획을 마치는 방식. 어떤 이름을 쓸 때도 아버지의 손은 흔들리지 않았다.
하윤은 그것이 두렵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지금은 그냥 그런 것이라고 알고 있었다.
그날 아침은 다른 아침과 달리 시작되지 않았다.
하윤은 마당의 우물가에서 물을 긷고 있었다. 두레박이 벽에 부딪히는 소리가 차가웠다. 가을이 깊어지면 물에서 쇠 냄새가 났다. 산 어딘가에서 녹슨 것이 스며드는 것인지, 원래 물이 그런 것인지, 하윤은 알지 못했다. 알아보려 한 적도 없었다. 그냥 가을은 그런 냄새가 난다고 알고 있었다.
발자국 소리가 마당 입구에서 멈췄다.
하윤이 고개를 돌렸을 때, 남자가 서 있었다. 마을 사람이 아니었다. 옷이 달랐다. 소매가 좁고 옷깃이 높은, 마을에서는 보기 어려운 천이었다. 먼 길을 왔다는 것이 먼지의 위치로 알 수 있었다. 장화의 앞코가 아니라 옆면에 흙이 붙어 있었다. 산길을 걸어온 것이다.
"강병수 기록관 댁입니까."
남자의 목소리는 물었지만 질문이 아니었다.
하윤은 대답 대신 집 안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아버지는 이미 문가에 나와 있었다. 언제부터 서 있었는지 알 수 없었다. 남자를 보는 아버지의 얼굴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 아무것도 없음이 하윤은 눈에 익었다.
남자가 품에서 봉투를 꺼냈다. 봉투는 납빛이었다. 가장자리가 반듯하게 접혀 있었고, 봉랍은 이미 뜯겨 있지 않았다. 처음 봉해진 채였다. 아버지가 그것을 받아드는 손이 잠깐 멈칫했다. 하윤은 그것을 보았다. 봉투가 바뀐 것이 아니었다. 아버지의 손이 바뀐 것이었다.
남자는 다른 말 없이 돌아섰다. 마당을 나가 산길 쪽으로 걸어갔다. 하윤은 두레박을 우물가에 내려놓고 아버지를 보았다. 아버지는 봉투를 보고 있었다. 봉투에서 냄새가 났다. 잉크 냄새였는데, 잉크 냄새가 아니었다. 무언가를 태운 것과 잉크가 섞인 냄새. 하윤의 코끝에 잠깐 걸렸다가 사라졌다.
아버지가 집 안으로 들어갔다.
하윤은 두레박을 들고 따라 들어갔다.
아버지는 봉투를 책상 위에 놓고 서 있었다.
방 안은 조용했다. 창 너머로 산이 보였다. 산 위쪽에 낮은 구름이 걸려 있었다. 아버지는 봉투를 한 번 보고, 그것을 집어 들었다. 봉랍을 뜯는 소리가 조용한 방에서 또렷하게 났다.
하윤은 물을 부엌에 내려놓고 문가에 서 있었다.
아버지가 편지를 읽었다. 눈이 아래로 내려갔다가 다시 위로 돌아갔다. 처음부터 다시 읽는 것이었다. 두 번이었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아버지는 편지를 접었다.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손을 거두었다. 하윤을 보지 않았다.
방 안에 무언가가 있었다. 말해지지 않은 것이 공기에 섞이는 느낌. 하윤은 그 느낌을 알았다. 어머니가 죽은 해 이후로 이 방에는 자주 그런 것이 있었다. 하윤은 그것에 이름을 붙이지 않기로 오래전에 결정했다.
아버지가 말했다.
"짐 싸라."
그것뿐이었다.
하윤은 물었다.
"얼마나."
"다."
하윤은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짐은 많지 않았다.
옷 몇 벌, 솜이불, 나무로 만든 빗, 아버지가 준 적 없는 낡은 벼루. 벼루는 어머니의 것이었다. 누가 하윤에게 준 것인지 하윤은 몰랐다. 어느 날 자신의 방에 있었고, 그 이후로 계속 있었다. 아버지는 그것에 대해 한 번도 말한 적이 없었다.
하윤이 보따리를 묶으려 할 때 아버지가 방에 들어왔다.
"내가 한다."
하윤은 비켰다.
아버지가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보따리를 풀었다. 옷을 꺼내 다시 접었다. 하윤이 접은 것보다 작게, 더 단단하게. 한 겹씩 눌러가며. 솜이불을 말아서 끈으로 묶었다. 벼루를 꺼내 천으로 감쌌다. 그 천은 아버지가 어디선가 가져온 것이었다. 오래된 천이었다. 색이 바랬지만 깨끗했다.
하윤은 아버지의 손을 보았다.
손이 움직이는 방식이 평소와 달랐다.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았는데, 다른 무언가가 있었다. 하윤은 그것을 한동안 보다가 알아챘다. 아버지의 손이 멈추는 것이 없었다. 멈추지 않으려고 움직이는 것이었다. 접고, 묶고, 감싸고, 다음으로 넘어가고. 멈추면 무언가가 올라오기 때문에 계속 움직이는 것이었다.
하윤은 질문하지 않았다.
운무각이 어디에 있는지 묻지 않았다. 왜 가야 하는지 묻지 않았다. 언제 돌아올 수 있는지도 묻지 않았다.
그 대신 창밖을 보았다. 마당에 아침 햇빛이 들어오고 있었다. 닭 한 마리가 마당 한가운데 서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었다. 산에서 바람이 내려왔다. 나뭇잎이 흔들렸다가 멈추었다.
아버지가 보따리를 다 쌌다.
일어서면서 아버지의 무릎이 삐걱거렸다. 보따리를 하윤 앞에 내려놓았다. 바닥에 앉아서 아버지를 올려다보는 하윤의 시선과 서 있는 아버지의 시선이 잠깐 같은 높이가 되었다가, 아버지가 돌아섰다.
"내일 새벽에 출발한다."
아버지가 방을 나갔다.
하윤은 보따리를 보았다. 벼루가 천 안에 싸여 있었다. 어머니의 것. 아버지가 직접 감싼 것.
하윤은 보따리를 자기 쪽으로 당겼다.
그날 밤 하윤은 잠들기 전에 마루에 나와 앉았다.
하늘은 맑았다. 산 능선 위로 별이 많았다. 변방의 별은 많다. 사람이 적으면 별이 많다는 것을 하윤은 어릴 때부터 알고 있었다. 누가 가르쳐준 것이 아니라 그냥 알게 된 것이었다.
부엌에서 아버지가 움직이는 소리가 났다. 무언가를 정리하는 소리. 나무 위에 나무가 놓이는 소리. 서랍이 닫히는 소리.
자물쇠가 잠기는 소리는 나지 않았다.
하윤은 마루에 앉아 무릎을 세우고 팔로 감쌌다. 마루가 차가웠다. 가을이었다. 내일이면 이 마루에 앉지 않을 것이었다. 그다음 날도. 그것이 얼마나 긴 시간인지 하윤은 알 수 없었다.
어머니가 어떻게 죽었는지 하윤은 모른다.
마법을 쓰다가 죽었다는 것만 안다. 마을에서 두 번 들었다. 한 번은 이웃집 아낙이 낮게 말하는 것을 들었고, 한 번은 마을 아이가 놀리듯이 말하는 것을 들었다. 두 번 다 하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두 번 다 하윤은 그 자리를 떠나지도 않았다.
아버지에게 물은 적이 한 번 있었다.
열 살 때였다. 어머니의 기일에 밥을 차려놓고 아버지가 앉아 있을 때였다. 하윤은 아버지 옆에 앉아서 물었다. 어머니가 어떻게 죽었는지.
아버지는 대답하지 않았다.
침묵이 아니었다. 침묵에는 뭔가 채워지지 않은 느낌이 있는데, 그것은 그냥 없는 것이었다. 말이 없는 것이 아니라, 그 질문이 닿을 수 있는 어떤 것이 아버지에게 남아 있지 않은 것 같았다. 하윤은 다시 묻지 않았다.
그것이 거절이 아니라는 것을 나중에 이해했다.
어떤 대답은 감추어져 있는 것이 아니다. 그냥 없는 것이다.
하윤은 마루에서 일어섰다. 별을 한 번 더 보았다. 산 능선이 하늘과 만나는 곳에 구름이 조금씩 모이고 있었다. 내일은 안개가 낄 것이었다.
방으로 들어가 누웠다.
보따리는 방 한쪽에 세워져 있었다. 벼루가 그 안에 있었다. 하윤은 눈을 감았다. 아버지의 손이 천을 접는 것이 눈꺼풀 안에서 잠깐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그는 오래 깨어 있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잠이 들었다. 별이 산을 넘는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