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문이 열렸다.
소리가 먼저였다. 쇠와 쇠가 맞닿는 무게 있는 마찰음. 그 소리를 삼 년 동안 안쪽에서만 들었는데, 바깥에서 들으니 전혀 달랐다. 더 짧게 느껴졌다. 더 가볍게.
나는 걸었다.
열한 걸음. 문이 등 뒤에서 다시 닫혔다. 그 소리는 듣지 않기로 했다.
어머니가 서 있었다. 주차장도, 차도 없었다. 그냥 거기, 철문에서 이십 미터쯤 떨어진 아스팔트 위에, 두 손으로 종이컵을 쥔 채 서 있었다. 회색 패딩 점퍼. 뒤로 묶은 머리카락. 내가 들어가던 날 입었던 옷과 똑같은 것인지 아닌지 나는 알 수 없었다. 삼 년 전 그날을 나는 거의 기억하지 못한다.
"왔니."
그게 다였다.
나는 어머니 앞에 섰고, 어머니는 종이컵을 내밀었다. 커피였다. 자판기 커피 특유의 달고 묽은 냄새가 차가운 공기 속에서 피어올랐다. 나는 두 손으로 받아 한 모금 마셨다. 너무 달았다. 삼 년 동안 자판기 커피를 수백 번 마셨는데도 항상 너무 달다고 생각했고, 지금도 그랬다. 나는 그 맛이 반가웠다.
어머니는 나를 위아래로 훑지 않았다. 울지도 않았다. 다만 내가 커피를 마시는 동안 하늘 어딘가를 보고 있었는데, 그 시선이 어디에 닿아 있는지 나는 끝내 찾지 못했다.
"버스 타자."
어머니가 먼저 걸었다.
나는 따라갔다.
버스 정류장까지는 걸어서 십오 분이었다. 어머니는 그 사이에 두 마디를 더 했다. 날이 춥다는 것, 그리고 집에 밥이 있다는 것. 나는 두 마디 모두에 대답했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우리는 원래 그런 사이였는지, 아니면 삼 년이 우리를 그런 사이로 만들었는지, 나는 정류장 의자에 앉으면서 그 질문을 머릿속에서 한 번 굴리다가 내려놓았다. 지금 그걸 따져야 할 이유가 없었다.
버스가 왔다.
우리는 나란히 앉았다. 창가 쪽이 나였다. 어머니는 가방을 무릎에 올려놓고 두 손을 얌전히 모았다. 버스가 출발하자 차창 밖으로 도시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회색 화요일 오전이었다. 구름이 두껍게 깔려 있어서 햇빛이 어디서 오는지 알 수 없었다. 빛이 위에서 내려오는 게 아니라 그냥 세상 전체에 희뿌옇게 배어 있는 것 같았다. 도로 위의 차들, 인도를 걷는 사람들, 유리창이 번들거리는 건물들. 다들 전혀 모르는 얼굴로 그냥 움직이고 있었다.
나는 그 광경을 가만히 보았다.
삼 년이다. 나는 속으로 수를 셌다. 세어봤자 아무 의미도 없는데, 그래도 세었다. 천 구십오 일. 버스가 신호에 멈출 때마다 옆 차선의 차들이 창문과 나 사이를 스쳐 지나갔다. 그 사람들은 오늘이 화요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겠지. 아니면 모르고 있겠지. 어느 쪽이든 상관없이 살고 있겠지.
나는 그게 이상하지 않았다. 그냥 그렇구나, 싶었다. 그것이 나를 약간 놀라게 했다.
기대했던 것이 있었다.
솔직하게 말하면 그렇다. 출소하는 날, 철문이 열리는 순간, 무언가가 폭발하듯 터져 나올 것이라고 기대했다. 분노이거나, 해방감이거나, 아니면 적어도 뚜렷한 무언가가. 삼 년 동안 그 감정이 준비되어 있었다. 쌓여 있었다. 아버지가 죽던 밤부터 내가 엉뚱한 혐의로 법정에 서던 날까지, 내가 삼킨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나는 알고 있었다.
그런데 철문이 열리고 내가 열한 걸음을 걸었을 때 터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냥 추웠다. 바람이 불었다. 어머니가 종이컵을 내밀었다. 커피가 달았다.
나는 그 밋밋함이 배신처럼 느껴졌다. 아니다. 배신이라는 말은 맞지 않는다. 무언가를 기대했다면 그 무언가를 원했다는 뜻인데, 내가 분노를 원했던 것인지 나는 잘 모른다. 아마 익숙했던 것이겠지. 삼 년 동안 분노와 함께 잤으니까. 그게 없어지면 무엇과 함께 자야 하는지 처음에는 알 수가 없으니까.
버스가 커브를 돌자 창밖으로 낮은 산등성이가 잠깐 보였다가 사라졌다. 아버지와 걷던 곳이 저 방향이었다. 나는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아직은 아니었다.
아버지가 죽은 것은 내가 열여덟이던 해 가을이었다.
뺑소니였다. 야간이었다. 이면도로. 아버지는 편의점에 다녀오는 길이었다. 봉지에 과자가 들어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으로. 나중에 형사가 그 이야기를 해줬는데, 아마 말하지 않는 편이 더 좋았을 것이다. 그 과자 이야기가 내 안에서 가장 오래 살아남은 것들 중 하나가 되어버렸기 때문에.
차는 한성그룹 회장 아들 것이었다. 한재호. 당시 스물네 살. 술이 섞여 있었다. 그는 현장에서 멈추지 않았다.
나는 그 이름을 신문에서 처음 보았다. 활자로 인쇄된 그 이름 석 자를 보던 순간을 나는 기억한다. 손끝이 먼저 알았다. 신문지가 구겨졌다.
그 뒤로 내가 한 일들에 대해서는 지금 여기서 다 말하지 않겠다. 다만 내가 감옥에 가게 된 것이 한재호 때문이 아니라는 사실만은 말해둬야겠다. 한재호는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나는 그와 무관한 혐의로 삼 년을 살았다. 이 역설에 대해서 나는 감옥 안에서 수천 번 생각했다. 그 생각이 나를 어떤 방향으로 이끌었는지도 수천 번 확인했다. 항상 같은 곳이었다. 분노. 분노. 분노.
버스가 정거장에 섰다. 사람들이 타고 내렸다. 어머니는 여전히 가방 위에 두 손을 얹은 채 창밖을 보고 있었다. 나는 어머니의 옆얼굴을 잠시 보았다. 주름이 늘었다. 삼 년 전보다. 당연한 일이었다. 나는 시선을 다시 창밖으로 돌렸다.
도시가 계속 흘러갔다.
나는 그때 결심을 굳힌 것이 아니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그렇다. 결심은 그 이전에 이미 되어 있었다. 감옥 안에서, 긴 밤들을 지나오면서, 어느 시점에 나는 결심을 했고, 그 결심을 매일 아침 다시 확인하는 것으로 살았다. 오늘도 그 확인을 한 번 더 했을 뿐이다.
나는 복수하지 않을 것이다.
분노를 연료로 살지 않을 것이다.
이 결심이 고결해서가 아니다. 적어도 처음에는 그렇지 않았다. 처음에 이 결심은 그냥 생존이었다. 분노로 살면 내가 먼저 타버릴 것 같았다. 그것이 먼저였다. 아버지의 죽음이 나를 아버지가 아닌 것으로 만들어버리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먼저였다.
아버지는 분노로 사는 사람이 아니었다.
나는 창에 이마를 살짝 기댔다. 유리가 차가웠다. 그 차가움이 좋았다.
복수가 아니라 용서를. 나는 그 문장을 삼 년 동안 외웠다. 아침에도, 점호 때도, 잠들기 전에도. 너무 많이 외워서 그 문장이 이제 나의 일부인지, 아니면 내가 만들어낸 갑옷인지 나 자신도 잘 모를 지경이 되었다.
그 구분이 중요한 것인지 아닌지도 아직은 몰랐다.
"다음 정거장이 갈아타는 데야."
어머니가 조용히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버스가 속도를 줄이기 시작했다. 창밖으로 아파트 단지가 지나갔다. 낮은 상가 건물들. 세탁소, 약국, 분식집. 익숙한 것들이었다. 달라진 것들이 몇 개 섞여 있었다. 새로 생긴 편의점. 없어진 빵집.
세상은 내가 없는 동안에도 제 속도로 달라져 있었다.
나는 그것도 배신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그냥 그렇구나, 였다. 또.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머니가 먼저, 나는 그 뒤에. 문이 열리자 바람이 들어왔다. 차갑고 건조한 11월의 공기. 나는 그 공기를 폐 깊이 들이마셨다.
바깥 공기다.
다시, 바깥 공기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잠시 눈을 감아야 했다.
갈아탄 버스 안에서 나는 창에 기댄 채 한 가지를 생각했다. 용서는 상대를 위한 것이 아니라고 누군가 말했다. 어느 책에서였는지, 아니면 교도소 상담사가 한 말이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용서는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라고. 상대를 위해 용서하는 척하지 말라고.
그 말이 맞는 것인지 그때도 몰랐고, 지금도 모른다.
다만 내가 용서하기로 결심했을 때 머릿속에 있었던 것은 한재호가 아니었다는 것은 안다. 아버지였다. 어머니의 옆얼굴이었다. 내가 되고 싶지 않은 나의 모습이었다.
그것이 용서인지 아닌지 나는 모른다.
그것이 이기적인 것인지 아닌지도 모른다.
버스가 언덕을 올라갔다. 어머니가 내 팔 옆에 자신의 팔을 살짝 붙였다. 말은 없었다. 그냥 닿아 있었다. 나는 그 온기를 느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회색 화요일이 유리창 너머로 계속 흘러갔다. 나는 도시를 바라보았다. 어딘가에 한성그룹의 빌딩이 있을 것이다. 유리 외벽이 번들거리는 고층 건물. 오늘은 그게 어느 방향인지 찾으려 하지 않았다.
찾을 날이 올 것이다. 그 날이 올 때 나는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가.
그것이 내가 앞으로 계속 물어야 할 질문이라는 것을 나는 알았다. 그리고 그 질문에 지금 당장 답할 수 없다는 것도.
버스가 정거장에 섰다. 어머니가 일어섰다.
"다 왔다."
나는 따라 일어섰다.
문이 열렸다. 우리는 내렸다. 골목 어귀에서 어머니가 오른쪽으로 꺾었다. 나는 그 뒤를 걸었다. 낯익은 골목이었다. 벽 모서리의 낡은 표시판도 그대로였다. 배수구에서 냄새가 올라왔다. 낙엽 썩는 냄새와 뒤섞인 차가운 흙냄새.
나는 그 냄새를 맡으면서 걸었다.
집이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