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는 오후 세 시부터 내렸다.
이준혁은 그것을 시계로 알지 않았다. 빗소리가 유리창 위에 쌓이는 방식, 처음엔 낱낱이 들리던 빗방울들이 서서히 하나의 소음으로 뭉개지는 속도, 그 변화의 결을 오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알았다. 시계는 들여다볼 필요가 없었다. 천 년을 살았으면 비 정도는 읽을 수 있어야 했다.
그는 오래된 나무 카운터 뒤에 서서 유리창을 바라보았다.
가게 이름은 지금 이 생에서는 '청하'였다. 간판은 창문 위쪽에 붙어 있었는데, 페인트가 두 곳 벗겨져 있었다. 그가 달았을 때부터 벗겨져 있었다. 전에도 그랬고, 전전에도 그랬다. 그는 낡은 것들을 굳이 새것으로 바꾸지 않았다. 낡음이 덜 외롭게 느껴지는 날들이 있었다.
서울 마포구의 이 골목은 늦가을에 특히 좁아보였다. 나뭇잎이 다 떨어지고 나면 골목이 좁아지는 것 같다고 누군가 말한 적이 있었다. 잎이 있을 때는 가지들이 골목 위로 뻗어 하늘을 나누어가지니까, 잎이 지면 하늘이 도로 넓어지고, 그러면 골목이 상대적으로 쪼그라든다고. 그 사람이 누구였는지 이준혁은 기억하지 못했다.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어느 시점부터는 얼굴보다 말이 먼저 떠오르게 되었다.
빗방울이 유리창을 타고 흘렀다. 그는 그것을 따라 시선을 내렸다.
가게 안은 어두웠다. 영업 시간은 끝나 있었고, 불을 켤 이유가 없었다. 선반마다 물건들이 진열되어 있었다—도자기 조각, 낡은 서화 두루마리, 청동 향로, 이름을 모르는 나라의 지도, 시간이 색깔을 가져간 나전칠기 함, 그리고 그 사이사이에 놓인 어떤 물건들은 파는 것이 아니라 그냥 있는 것들이었다. 팔 수 없는 것과 팔지 않을 것과 팔면 안 되는 것의 차이를 그는 오래전에 체득했다.
그는 검에 손을 얹지 않았다. 손을 얹는 일은 이미 습관에서 제거된 행동이었다. 가슴 안쪽, 흉골 아래 어딘가에 그것이 있다는 감각은 늘 있었다—없는 날이 없었다—하지만 감각이 있다는 것과 거기에 손을 갖다 댄다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손을 얹으면 실재가 되었고, 실재가 되면 생각을 해야 했다. 그는 오늘 생각을 하고 싶지 않았다.
빗소리.
유리창.
흐르는 빗방울.
그는 계속 서 있었다.
이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가게 밖 골목 쪽에 있었다. 건물 자체가 오래된 것이라 계단이 좁았고, 좁은 만큼 발소리가 잘 들렸다. 이준혁은 그 발소리들을 오랫동안 들어왔다. 학생이었던 임차인의 가벼운 발소리, 야간 교대 근무를 하던 남자의 무거운 발소리, 아이가 있던 가족의 뒤죽박죽 리듬. 어떤 이들은 오래 있었고, 어떤 이들은 계절이 바뀌기 전에 떠났다. 그가 먼저 정을 붙이지 않으면 이별은 그냥 문이 닫히는 소리였다.
위층 방은 지난달부터 비어 있었다. 내놓은 날 한 번, 누군가 문을 열어보고 그냥 갔다. 그 이후로 조용했다.
오늘도 조용할 것이라고 생각했을 때, 골목 쪽에서 소리가 들렸다.
발소리라고 하기엔 너무 고요했다. 그는 처음에는 비 소리의 변주라고 생각했다. 빗속에 무언가 움직이는 것의 기척. 이준혁은 유리창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여자였다.
우산이 없었다. 짐도 없었다. 어깨 위에서 빗물이 흘렀지만 그녀는 속도를 바꾸지 않았고, 하늘을 올려다보지도 않았고, 빗속에서 자신이 젖고 있다는 사실에 어떤 의견도 없어 보였다. 검은 코트가 어깨선에 딱 맞게 떨어졌다. 손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이삿짐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었다.
그녀는 계단 쪽으로 걷고 있었다.
이준혁은 그것을 잠시 바라보았다. 짐이 없다는 것은 두 가지 중 하나였다. 이미 모든 것을 가진 사람이거나, 아니면 가질 것이 없는 사람이거나. 그리고 그는, 천 년의 경험으로, 빗속에서 우산을 쓰지 않는 사람의 두 가지 종류도 알고 있었다. 비가 반갑거나, 아니면 비가 어떤지에 관심이 없거나.
저 여자는 후자였다.
계단을 오르는 소리가 들렸다. 빗소리 사이로, 조용하고 균일한 보폭. 망설임이 없었다. 처음 오는 곳인데도 길을 아는 사람의 걸음이었다.
그는 카운터 뒤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중간쯤에 작은 창이 있었다. 불을 켜두지 않아도 비 오는 날의 흐릿한 빛이 계단 쪽으로 조금 들어왔다. 그 창 아래에 우편함이 있었고, 열쇠는 거기에 넣어두었다고 문자를 보냈다.
이준혁은 문자를 보낸 사람이 자신이라는 사실을 잊었다는 듯 카운터를 돌아 나왔다. 굳이 그럴 이유가 없었다. 그냥 움직였다.
계단 입구 문을 열자 빗소리가 커졌다. 좁은 계단은 밖에서 보는 것보다 더 좁았고, 위에서 내려오는 빛이라고는 2층 복도 쪽 작은 전구가 내는 누런 빛뿐이었다. 그 빛 아래에 그녀가 있었다.
계단을 다 오른 자리에 서서, 열쇠를 들고, 이준혁을 보고 있었다.
그는 그녀의 얼굴을 보았다. 무표정이었다. 놀라거나 당황한 것이 아니라, 표정이 없는 것에 가까웠다. 눈이 어두웠다—색깔이 어두운 것이 아니라, 무언가를 보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아무것도 보지 않는 것 같기도 한, 그런 어두움. 이준혁은 그 종류의 눈을 본 적이 있었다. 오래 살다 보면 눈의 종류를 알게 되었다. 많이 잃은 사람의 눈, 아직 잃기 전의 사람의 눈, 잃은 것을 잊은 사람의 눈. 저 눈은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았다. 처음 보는 종류였다.
그것이 그를 잠깐 멈추게 했다.
"집주인이에요?"
목소리는 낮고 평탄했다. 질문이라기보다 확인에 가까운 어조.
"그렇소."
그가 대답했을 때, 그는 자신이 오래된 말투를 쓰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현대 서울에서는 어울리지 않는 말투. 가끔 그랬다. 오래되면 오래될수록 새 것을 흉내내는 데 에너지가 필요했고, 피곤한 날에는 흉내를 놓쳤다.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지적하지도 않았다.
"열쇠는 찾았소?"
"네."
"짐은요?"
그녀는 잠깐 자신의 빈손을 내려다보았다. 아, 하는 표정도 아니었다. 단지 확인하는 표정이었다. 자기 손에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지금 막 인지한 사람의 표정.
"없어요."
"없어요."
이준혁은 그 말을 반복했다. 의도한 것이 아니었다. 그냥 그렇게 나왔다.
그녀는 그를 다시 보았다. 계단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시선이었다. 이준혁은 계단 아래에 서 있었고, 그녀는 계단 위에 서 있었으므로, 그녀의 시선이 아래로 향했다. 하지만 내려다보는 느낌이 아니었다. 눈높이의 차이가 있는데도 그것이 느껴지지 않는 시선이 있었다. 저 눈이 그랬다.
그때였다.
그의 손이 움직였다.
의도하지 않은 움직임이었다. 의식하기도 전에 오른손이 가슴 쪽으로 올라갔다—흉골 아래, 늘 있는 자리, 검자루가 있는 자리. 손이 거기 닿기 직전에 그는 스스로를 멈췄다. 뒤늦게 멈췄다.
하지만 검이 먼저 반응했다.
따뜻했다.
이준혁은 그것을 아주 오랫동안 느끼지 못했다. 따뜻함. 검자루에서 오는, 금속이 아니라 무언가 살아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온도. 마지막으로 이것을 느꼈던 것이 언제였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수십 년은 됐을 것이다. 어쩌면 그보다 더.
그는 손을 내렸다. 천천히, 자연스럽게 보이도록.
그녀는 그것을 보고 있었다.
보았는지 아닌지 알 수 없는 얼굴로.
"불편한 점 있으면 아래로 내려오시오."
이준혁은 그렇게 말하고 먼저 계단을 내려갔다. 등을 보이며 내려가는 것이 불리한 위치처럼 느껴졌지만, 그 느낌을 느끼는 자신이 더 이상하게 느껴졌다. 불리한 위치. 그가 그런 것을 생각한 것이 얼마 만이었는지.
가게 문을 닫으면서 빗소리가 다시 유리창 너머로 멀어졌다.
가게 안은 전과 같았다. 어두웠고, 조용했고, 낡은 것들이 제자리에 있었다.
이준혁은 카운터로 돌아가지 않았다. 계단 입구와 가장 가까운 선반 앞에 서서, 그 위에 놓인 청동 향로를 보았다. 고려 시대 것이었다. 그가 직접 가져온 물건이었다. 팔지 않는 것들 중 하나.
검이 식지 않고 있었다.
오래된 것에는 오래된 것이 반응한다고, 한때 누군가 말한 적이 있었다. 어떤 조각들은 가까이 가면 진동한다고. 이준혁은 그 말을 믿지 않았지만, 지금 이 온도는 설명이 필요했다.
위층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아주 가볍고, 균일하고, 필요한 만큼만 움직이는 발소리.
그는 향로를 보다가 시선을 내렸다.
천 년을 살았으면 이상한 것에 흔들리지 말아야 했다. 그것이 원칙이었다. 원칙 없이 천 년을 살 수는 없었다. 그는 오래전에 이 원칙을 세웠고, 오래전에 이 원칙을 어긴 적이 있었고, 그때마다 지불해야 할 것들을 치렀다. 그 목록은 길었다. 목록이 길수록 원칙은 단단해져야 했다.
검이 여전히 따뜻했다.
그는 선반 앞에서 오랫동안 서 있었다. 빗소리가 계속 유리창을 두드렸고, 위층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게 되었다. 짐이 없으니 정리할 것도 없었을 것이다. 그녀는 아마 이미 가만히 앉아 있을 것이었다. 아니면 가만히 서 있을 것이었다. 가만히 있는 사람의 느낌이 있었다—오래 가만히 있어본 사람의.
이준혁은 자신이 그 사람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인지했다.
그리고 생각을 멈추지 않았다는 것도 인지했다.
이름을 모른다고 속으로 말했다. 이름을 모르면 사람이 아니라 현상이었다. 위층에서 움직이는 인기척, 비를 맞으며 짐 없이 도착한 여자, 처음 보는 종류의 눈을 가진 존재. 현상에는 반응하지 않아도 됐다.
검은 식지 않았다.
빗소리는 계속됐다.
이준혁은 결국 카운터 뒤로 돌아갔다. 그리고 다시 유리창을 보았다. 빗방울들이 흘렀다. 늦가을의 골목이 흐릿하게 비쳤고, 간간이 사람이 지나갔고, 세상은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계속됐다.
그에게 세상은 언제나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계속됐다.
천 년 동안.
검이 따뜻한 것은 오늘이 처음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렇게 식지 않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는 그 사실을 오래 들여다보았다. 조심스럽게, 멀리서, 뜨거운 것에 너무 가까이 가지 않으려는 사람처럼.
그러다 그는 시선을 거두었다.
비는 계속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