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람이 울리기 삼 분 전에 눈이 떠졌다.
세아는 천장을 바라보았다. 어둠이 아직 방 안에 고여 있었고, 창문 너머로 마포대교 쪽 가로등 불빛이 커튼 솔기로 스며들었다. 5시 37분. 그녀는 알람이 울리기 전에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오른손이 먼저, 그다음 엄지손가락. 화면을 끄는 동작은 오래되어 생각 이전에 이루어졌다.
이불을 걷고 일어나는 데 걸리는 시간은 대략 사십 초였다. 그 사십 초 동안 그녀는 아무것도 결정하지 않았다. 결정할 것이 없었다.
주방 형광등을 켰다. 오래된 등이라 처음에는 두 번 깜박이다가 켜졌다. 그 사이에 냉장고를 열었다. 달걀 세 개, 어젯밤에 데쳐놓은 시금치, 유리 밀폐용기에 담긴 멸치볶음. 순서는 항상 같았다. 프라이팬을 꺼내고, 가스 불을 켜고, 식용유를 두르고. 달걀 두 개를 깨는 동안 거실 텔레비전이 켜졌다. 취침 예약이 해제되는 시간이었다.
"—현재 카운트다운 기준으로 400년 3개월 12일이 경과까지 남았습니다. 국제우주감시기구는 오늘 오전—"
앵커의 목소리는 낮고 균일했다. 세아는 달걀 흰자가 프라이팬 가장자리에서 지글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주걱을 움직였다. 텔레비전 화면에는 파란 배경 위에 숫자가 떠 있었다. 크고 흰 숫자였다. 400:03:12:07. 콜론이 규칙적으로 깜박였다. 마치 전자시계처럼.
달걀프라이를 한 쪽에 밀어두고 시금치를 들어 올렸다. 물기를 손으로 짜는 감촉이 차가웠다. 무쳐놓은 것이라 참기름 냄새가 손바닥에 남았다. 깨소금이 고르게 배어 있는지 확인하고, 도시락 칸에 맞게 집어넣었다.
도시락통은 11년 전에 산 것이었다. 마포구청 앞 생활용품 가게에서, 교사 발령이 나던 해 봄에. 안쪽에 작게 긁힌 자국이 있었는데 언제 생긴 건지 알 수 없었다. 칸이 세 개짜리였고, 그녀는 항상 왼쪽 칸에 밥을, 가운데에 반찬 두 가지를, 오른쪽에 달걀을 넣었다. 뚜껑을 닫을 때 딸깍 소리가 한 번 났다. 그 소리를 확인하고 나서야 그녀는 주방 등을 껐다.
"—해당 신호의 재분석 결과가 다음 주 학술지에 게재될 예정이며, 일부 연구자들은—"
세아는 세면대 앞에 서서 치약을 짰다. 양치를 하는 동안 텔레비전 소리는 계속되었다. 외계 문명. 보이지 않는 자들. 400년. 그 단어들은 아침 7시 뉴스의 다른 단어들, 예를 들면 도심 기온 영하 3도, 경의중앙선 지연 운행, 마포구 새벽 화재 같은 단어들과 같은 목소리로 읽혔다. 그녀는 거품을 뱉고 입 안을 헹궜다.
옷을 입으면서 창밖을 보았다. 한강 건너편 아파트 불빛들이 아직 켜져 있었다. 이 시간에 저 집들에서는 누군가가 밥을 짓거나, 아이를 깨우거나, 혹은 혼자 커피를 마시고 있을 것이었다. 회색 니트 위에 베이지 코트를 걸쳤다. 머플러는 문 옆 고리에 걸려 있었다. 지난 화요일에 걸어두고 그대로였다.
현관 옆 창가에 분재가 있었다.
느티나무 분재였다. 화분은 작고 납작한 것으로, 아버지가 쓰던 것이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이 아파트를 물려받으면서 함께 온 것들 중 하나였다. 세아는 작은 물뿌리개를 들고 뿌리 쪽으로 천천히 물을 주었다. 흙이 물을 머금는 속도를 보면서 멈추었다. 손가락으로 흙 표면을 살짝 눌러보았다. 지난밤부터 방 안이 건조했다. 조금 더 주어도 될 것 같았다. 한 번 더 부었다.
분재 잎은 겨울이라 대부분 떨어져 있었다. 잔가지만 남은 모양이었지만, 그것도 모양이었다. 세아는 분재를 사 년째 키우고 있었고, 아직 한 번도 죽이지 않았다. 이것이 자랑은 아니었다. 그냥 사실이었다.
도시락 가방을 챙기고, 출근 가방에 넣고, 지퍼를 잠그고. 핸드폰, 지갑, 교통카드. 현관 거울 앞에서 한 번 섰다가 그냥 지나쳤다.
문을 잠그면서 손잡이를 한 번 당겨 확인했다.
계단을 내려가는 동안 아래층 어딘가에서 아이 우는 소리가 들렸다. 202호일 것이었다. 거기 사는 것은 젊은 부부였고, 아이는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것 같았다. 1층 현관을 밀고 나오자 찬 공기가 얼굴로 왔다. 머플러를 입 아래까지 올렸다. 숨을 내쉬자 하얀 김이 나왔다가 금방 사라졌다.
골목을 걸어 나오는 길에 편의점 간판이 켜져 있었다. 유리 안쪽에 점원이 물건을 정리하고 있었다. 그 옆 가판대에 신문이 꽂혀 있었다. 헤드라인이 보였다.
「'보이지 않는 자들' 신호 재분석—기존 발표 외 추가 정보 존재 가능성」
세아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지하철역까지는 걸어서 칠 분이었다. 2031년 1월의 마포 새벽은 조용했다. 배달 오토바이 한 대가 지나갔고, 횡단보도 앞에서 자전거를 끌고 서 있는 노인이 있었다. 신호가 바뀌자 그 노인은 자전거를 밀고 천천히 건너기 시작했다. 세아는 그 뒤를 따라 건넜다.
역 계단을 내려가면서 가방을 고쳐 멨다. 도시락이 기울지 않게. 시금치가 쏟아지지 않게.
플랫폼에는 이미 사람들이 서 있었다. 출근하는 사람들, 가방을 든 사람들, 핸드폰을 보는 사람들. 맞은편 스크린도어에 광고가 흘렀다. 화장품 광고였다가, 보험 광고였다가, 그다음에는 정부 공익광고였다. 파란 배경에 흰 글씨.
「미래 세대를 위한 지금, 우리의 준비가 시작됩니다」
전동차가 들어오는 소리가 터널에서 울려 나왔다. 바람이 먼저 왔다. 세아는 노란 선 안쪽에 발을 맞춰 섰다. 문이 열렸다.
그녀는 탔다.
서 있을 자리를 찾고, 손잡이를 잡고, 가방을 몸 앞으로 당겼다. 옆 사람의 코트 소매가 닿을 듯 말 듯 했다. 전동차가 출발했다. 터널 안에서는 창문이 거울이 되었다. 세아는 자신의 얼굴을 잠깐 보았다가 시선을 내렸다.
가방 안에서 도시락이 자기 무게로 앉아 있었다.
합정, 홍대입구, 신촌. 사람들이 타고 내렸다. 이대역 즈음에서 맞은편 좌석의 남자가 핸드폰을 보고 있었는데, 화면에 그 숫자가 보였다. 외계 함대 카운트다운 앱이었다. 붉은 숫자. 400년이 조금 더 세세하게 쪼개져 있었다. 일, 시간, 분, 초까지. 초침처럼 줄어들고 있었다.
남자는 화면을 내리더니 다른 앱을 열었다. 배달 음식 앱이었다.
세아는 목적지 역 안내 방송을 들었다. 가방 어깨끈을 바로잡았다. 문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플랫폼으로 나와 계단을 올라가면 학교까지는 다시 칠 분이었다. 오르막이 조금 있었다. 겨울이라 가로수 은행나무들이 다 벌거벗어 있었고, 보도블록이 밤새 얼었다가 덜 녹은 곳이 있었다. 세아는 그 위를 피해 걸었다. 발바닥에 느껴지는 감각으로 어디가 미끄러운지 알 수 있었다. 11년 동안 같은 길이었다.
학교 정문이 보일 때쯤 수위 아저씨가 손을 들었다. 세아도 고개를 숙였다. 정문에 학교 현수막이 하나 새로 걸려 있었다.
「우리 학교 2431 미래유산위원회 발족 기념—다음 세대를 위한 교육, 지금 시작합니다」
글씨체가 부교장 최정식 선생의 것이었다. 세아는 잠깐 읽다가 교무실 쪽으로 걸어갔다.
교무실 문을 열면 먼저 커피 냄새가 났다. 오래된 원두 커피 냄새와 복사기 토너 냄새가 섞인, 이 방만의 냄새였다. 세아는 자기 자리에 가방을 내려놓았다. 도시락 가방을 꺼내 서랍 위에 올려두었다. 점심시간에 꺼내기 좋은 자리였다.
옆자리는 아직 비어 있었다.
강민준 선생 자리. 그의 책상 위에는 어제 쓰다 만 것처럼 보이는 수식 노트와, 커피잔이 있었다. 잔 안에는 마른 커피 자국이 남아 있었다. 그가 오늘 아침 교무실에 먼저 들렀다가 나간 것인지, 아직 안 온 것인지. 세아는 그 커피잔을 한 번 보고 의자를 당겨 앉았다.
출석부를 꺼내고, 오늘 수업 자료를 펼쳤다.
창밖에서 첫 번째 수업 예비 종이 울렸다.
세아는 볼펜 뚜껑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