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 45.6 Billion Won, One Sleepless Night

휴대폰 화면이 꺼졌다.

기훈은 다시 버튼을 눌렀다. 숫자가 돌아왔다. 456억 원. 정확히는 456억 원에서 세금을 제하고 남은 돈이었는데, 그 액수가 얼마인지 그는 이미 세 번이나 계산기를 두드렸고 세 번 모두 같은 답이 나왔지만 여전히 믿지 못했다. 화면이 또 꺼졌다. 그는 다시 눌렀다.

원룸 안에는 아무 소리도 없었다.

아니, 소리는 있었다. 복도 끝 어딘가에서 냉장고가 윙윙거리는 소리, 위층에서 드라마 음향이 새어 내려오는 소리, 자정이 지난 서울의 거리에서 가끔씩 올라오는 오토바이 소리. 그런 것들이 있었다. 하지만 기훈의 귀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그는 침대 끝에 걸터앉아 발바닥이 장판에 닿는 감각조차 느끼지 못한 채, 손 안의 화면만 바라보고 있었다.

숫자 아래 작은 글씨로 은행 이름이 찍혀 있었다. 입금 시각은 오후 3시 47분. 그는 그 시각에 은행 창구 앞에 앉아 손을 떨면서 통장을 만들었다. 신규 계좌 개설 신청서를 쓸 때 주소 칸에서 볼펜이 멈췄다. 이 방 주소를 적는 것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마치 자신이 아직 살아 있다는 사실을 공식 문서에 처음으로 기입하는 것 같았다.

창구 직원은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그냥 통장을 건넸다. 기훈은 받아 들고 밖으로 나왔다. 오후의 햇살이 아스팔트에 박혀 있었다. 그는 그 빛을 보며 잠깐 눈을 찡그렸다가, 그대로 편의점으로 걸어가 삼각김밥 하나를 샀다. 집에 와서 비닐을 벗기다가 멈췄다. 결국 먹지 않았다. 삼각김밥은 지금 탁자 위에서 비닐이 반쯤 찢긴 채 놓여 있었다.

새벽 한 시였다.

기훈은 화면을 다시 한 번 껐다가 켰다. 숫자는 변하지 않았다.

게임에서 돌아온 날 밤을 그는 기억하지 못한다. 정확히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것과 기억할 수 없는 것이 뒤섞여 있어서 어느 쪽이 진짜인지 모른다. 누군가 그에게 담요를 씌워줬던 것 같다. 병원 냄새가 났다. 형광등이 천장에서 웅웅거렸다. 그 소리를 들으며 그는 생각했다. 나는 살아 있다. 그리고 곧바로, 나는 살아 있다는 생각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 무게가 내려앉았다. 455명. 001번 할아버지부터 시작해서 마지막으로 눈을 감은 상우까지.

상우.

기훈은 눈을 감았다. 화면이 꺼지는 것이 눈꺼풀 위로 느껴졌다.

상우의 손이 자기 손 위에 있었다. 검은 피. 차가웠다. 얼마나 차가웠는지 그 감촉이 아직도 손바닥 한가운데에 살아 있어서, 기훈은 가끔 손을 쥐었다 펼 때 그 냉기가 다시 올라오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상우는 자기 손으로 자기 목을 찔렀다. 그리고 쓰러졌다. 기훈의 팔 안으로. 마치 오래전부터 그렇게 하기로 결정해둔 것처럼.

형광등 하나가 깜빡였다.

기훈은 눈을 뜨며 고개를 들었다. 그의 방 형광등은 깜빡이지 않았다. 그냥 켜져 있었다. 흰빛이 천장에서 내려와 방 안의 모든 것을 평평하게 만들었다. 낡은 장판, 접힌 이불, 탁자 위의 삼각김밥, 그리고 그 자신. 모든 것이 같은 색이었다. 흰빛이 색을 지웠다.

그는 냉장고 문을 열었다.

물. 소주 한 병. 요구르트 두 개, 유통기한이 이미 지났다. 그는 물을 꺼냈다가 다시 넣었다. 소주를 꺼냈다가 잠깐 들여다보다가 다시 넣었다. 냉장고 문을 닫았다. 다시 침대 끝으로 돌아와 앉았다.

456억.

그 숫자가 어떤 게임의 상금이라는 것을, 그 게임에서 사람들이 죽었다는 것을, 그 죽음들이 쌓여서 이 숫자가 만들어졌다는 것을, 그러므로 이 숫자의 무게는 사실 무게가 아니라 부피라는 것을—시신들이 겹겹이 쌓여서 만들어낸 부피—기훈은 그런 식으로 생각을 끝까지 밀고 가다가 멈춰야 했다. 생각이 거기까지 가면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새벽 두 시.

그는 방 한쪽 구석에 놓인 봉투를 바라봤다. 퇴원하면서 병원 측이 돌려준 어머니의 소지품 중에 끼여 있던 영수증 묶음이었다. 입원비 청구서. 치료비 명세서. 날짜별로 쌓인 종이들. 어머니는 그것들을 고무줄로 묶어 보관하고 있었다. 그 사실을 알았을 때 기훈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어머니는 자기가 얼마나 아픈지를 숫자로 정리해 고무줄로 묶어 봉투에 넣고 있었다. 아들이 언젠가 가져가길 기다리면서.

그는 봉투를 열었다. 종이들을 꺼냈다. 가장 오래된 영수증의 날짜는 2년 전이었다. 당뇨 합병증으로 처음 입원했던 달. 그때 기훈은 어디 있었는가. 그때 그는 경마장에 있었다. 7번 말이 3코너를 도는 것을 보면서 이번엔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번엔 된다고. 이번엔 반드시.

종이들을 다시 봉투에 넣었다.

탁자 위에 볼펜이 있었다. 그는 볼펜을 집었다. 편의점 영수증 뒷면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그것을 뒤집었다. 흰 면을 위로.

어머니.

첫 번째로 그 이름을 썼다. 이름이 아니라 관계를 썼다. 이름을 쓰는 건 이상하게 느껴졌다. 어머니는 그냥 어머니였다. 오 말순이 아니라. 볼펜 끝이 종이 위에서 잠깐 떨었다가 멈췄다.

그 아래 가은.

딸의 이름은 부드럽게 써졌다. 세 글자. 가은이는 이제 열다섯이었다. 기훈이 마지막으로 본 가은이는 열두 살이었다. 세 살이 얼굴 어디에 어떻게 붙었는지 그는 알지 못했다.

상우 엄마.

볼펜이 멈췄다. 그 줄을 쓰는 데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상우 엄마의 이름을 그는 알고 있었다. 조점례. 쌍문동 시장에서 생선 장사를 한다는 것도 알았다. 상우가 한 번, 딱 한 번 언급했다. 우리 어머니 새벽 네 시에 일어나신다고. 생선 손질하려면. 그 말을 상우가 어떤 표정으로 했는지 기훈은 기억하고 있었다. 자랑인지 미안함인지 구분되지 않는 표정으로.

목록은 계속됐다.

사촌 형. 고모. 오랫동안 연락이 끊겼던 사람들. 돈 때문에 멀어진 사람들. 돈 때문에 상처를 준 사람들. 볼펜이 느리게 움직였다. 그는 이름들을 쓰면서 얼굴들을 떠올렸다. 얼굴이 선명하지 않은 이름들도 있었다. 그런 이름들 옆에는 아무것도 적지 않았다.

새벽 세 시 반.

목록이 어느 정도 채워졌을 때 그는 볼펜을 내려놓고 다시 휴대폰을 집었다. 화면을 켰다. 은행 앱을 열었다. 잔액을 확인했다. 숫자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변하지 않고, 줄지 않고, 늘지도 않고.

기훈은 그 숫자를 보며 생각했다. 이것으로 모든 것을 고칠 수 있을 거라고.

그 생각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를 그는 아직 몰랐다. 새벽의 공기는 탁했고, 형광등은 흰빛으로 모든 것을 지우고 있었고, 그의 손은 아직도 어딘가 차가웠다. 복도에서 누군가 발소리를 내며 지나갔다. 생선 가게 냄새가 나지 않는데도 그는 잠깐 비린내를 맡은 것 같았다. 없는 냄새였다. 그는 알면서도 코를 찡그렸다.

001.

002.

003.

눈을 감으면 번호가 왔다. 그것이 이 밤 내내 그가 세어온 것이었다. 양 대신 번호를. 번호 아래 얼굴이 있었다. 어떤 얼굴은 이름이 있었고 어떤 얼굴은 이름이 없었다. 이름 없는 얼굴들이 더 무거웠다. 이름을 몰랐다는 죄목이 따로 있었다.

455.

거기서 항상 멈춰야 했다. 455 다음에는 자기 번호가 왔다. 456. 그 번호 아래는 얼굴이 아니라 이 방이 있었다. 이 천장, 이 형광등, 이 숫자.

창밖이 조금씩 밝아오고 있었다.

기훈은 침대에서 일어나 창가로 갔다. 서울의 아침이 회색으로 스며들고 있었다. 가로등이 하나씩 꺼졌다. 빵집이 문을 여는지 어딘가에서 버터 냄새가 났다. 진짜 냄새였다. 그는 유리창에 이마를 대고 차가운 감촉을 느꼈다.

탁자 위의 영수증 뒷면에는 이름들이 빽빽했다.

그 목록의 맨 위에 적힌 어머니라는 글자 옆에, 그는 마지막으로 숫자를 하나 적었다. 병원비 청구서에서 계산한 액수였다. 정확한 숫자. 소수점 없이 원 단위까지.

그것이 그가 새벽 내내 생각해온 해결이었다. 숫자로 숫자를 지우는 것. 액수로 죄를 씻는 것.

아침이 왔다. 잠은 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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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 45.6 Billion Won, One Sleepless Night — 황금 재와 함께 춤을 | GenNove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