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 The Handshake That Cost Everything

펜이 종이에 닿기 직전, 박새로이는 자신의 손을 내려다본다.

손은 떨리지 않는다. 그것이 오히려 이상하다. 아버지의 영정 앞에서도, 장례를 치르는 사흘 내내도, 화장장의 굴뚝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을 보면서도 그의 손은 이렇게 고요했다. 마치 몸이 이미 무언가를 결정해놓고 뇌에게는 아직 알리지 않은 것처럼.

창밖으로 서울이 펼쳐져 있다. 32층. 아버지가 평생 올라와보지 못했을 높이. 유리 너머로 도심의 빌딩들이 칼날처럼 하늘을 가르고, 그 사이사이로 을지로 골목의 낡은 지붕들이 섞여 있다. 저 아래 어딘가에 아버지의 단골 해장국 집이 있다. 삼천 원짜리 국밥을 시키면서도 팁을 남기던 사람. 그 생각이 스치는 순간 새로이는 시선을 걷어 테이블 위로 돌린다.

계약서는 스물두 페이지다.

장대희는 책상 맞은편에 앉아 있다. 일흔을 바라보는 나이인데 그의 얼굴에는 그 세월이 주름 대신 밀도로 새겨져 있다. 눈빛이 조용하다. 분노도 없고, 승리감도 없다. 장대희는 이미 이 방에서 이 장면을 여러 번 보았을 사람의 표정을 하고 있다. 그것이 새로이를 가장 불편하게 만드는 것이다.

"서두를 필요 없습니다."

장대희가 말한다. 목소리는 낮고 건조하다. 권유가 아니라 사실의 진술 같은 어조다.

"저는 기다릴 수 있어요."

새로이는 대답하지 않는다. 계약서의 첫 페이지를 다시 읽는 척한다. 하지만 글자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대신 이 방의 냄새가 들어온다. 가죽과 목재와 그 아래에 깔린 희미한 커피 향. 아버지를 병원에 옮기던 날 구급차 안에서 맡았던 소독약 냄새와 이 방의 냄새 사이에는 아무 공통점도 없는데, 새로이는 지금 그 두 가지가 같은 서랍 안에 들어있는 느낌을 받는다.

아버지의 이름은 박성열이었다. 향년 오십사세. 장가(長家) 푸드 그룹 계열사 배송차량 사고로 인한 사망. 사고 당일 차량 점검 기록은 부재. 담당 직원 면직 처리로 종결.

새로이가 이 사실들을 알게 된 건 죽음 이후였다. 만약 살아생전에 알았다면 지금 여기 앉아 있지 않았을 것이다. 살아생전에 알았다면 분노가 다른 방향으로 흘렀을 것이다. 그러나 아버지는 아무것도 모른 채 죽었고, 새로이는 모든 것을 알게 된 채 살아 있다. 그 비대칭이 그를 이 자리에 데려다놓았다.

"전략기획팀장."

새로이가 말한다. 처음 입을 여는 것이다. 목소리가 예상보다 평탄하게 나와서 잠깐 스스로 놀란다.

"그 직책이 실질적인 권한을 갖는다는 걸 어떻게 확인합니까."

장대희는 잠시 새로이를 바라본다. 대답을 생각하는 게 아니라 대답의 방식을 결정하는 것처럼.

"권한은 쓰는 사람이 만드는 겁니다. 박 팀장이 어떻게 쓰느냐에 달렸어요."

박 팀장. 아직 서명도 하지 않았는데 그 호칭이 먼저 도착해 있다. 새로이는 그 사실을 마음 어딘가에 표시해두지만 표정으로는 내보내지 않는다.

"계열사 감사 권한도 포함됩니까."

"포함됩니다."

"배송 부문도요."

한 박자 멈춤. 장대희의 눈꺼풀이 아주 미세하게 내려갔다 올라온다.

"물론입니다."

새로이는 다시 계약서를 본다. 열일곱 번째 페이지에 직무 범위 조항이 있다. 그는 그것을 이미 세 번 읽었다. 거기에 배송 부문은 명시되어 있지 않다. 장대희는 그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새로이도 그것을 알고 있다. 두 사람이 서로 알고 있다는 것을 서로 알면서 아무도 그 문장을 꺼내지 않는다.

이것이 협상이다. 새로이는 처음으로 이 방의 규칙을 이해한다. 이 방에서는 말해지지 않는 것들이 말해지는 것들보다 무겁다.

그는 펜을 든다.

열두 살 때 아버지가 시장 입구에서 리어카를 끌다 넘어진 적이 있다. 복숭아들이 바닥에 굴렀고, 새로이는 한 손에 복숭아를 한 손에 아버지 팔을 잡았다. 아버지는 괜찮다고 했고, 복숭아를 하나 집어 새로이에게 건넸다. 맛있어, 먹어봐. 바닥에 굴렀는데도 맛있다고 했다. 새로이는 그때 아버지가 부끄럽지 않았다. 자랑스러웠다. 왜 자랑스러웠는지는 그때 말로 설명할 수 없었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펜이 계약서에 닿는다.

서명란은 마지막 페이지에 있다. 새로이는 한 글자씩, 박새로이, 이름을 쓴다. 글씨가 자신의 것이 맞는지 확인하듯 천천히. 장대희는 그 과정을 바라보지 않는다. 시선을 창밖으로 두고 있다. 그 배려인지 외면인지 모를 시선의 방향이 오히려 이 순간을 더 적막하게 만든다.

서명이 끝난다.

새로이는 펜을 테이블에 내려놓는다. 소리가 생각보다 크다. 아니, 이 방이 너무 조용한 것이다.

"잘 결정하셨습니다."

장대희가 말한다. 악수를 위해 손을 내밀지는 않는다. 그럴 필요가 없는 자리에 그는 있다.

새로이는 일어선다. 정장 재킷이 어깨에서 반듯하게 떨어진다. 이 재킷은 오늘을 위해 샀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혼자 정장을 산 것이다. 아버지 입관 때 입었던 것과 다른, 살아 있는 날들을 위한 옷. 그 사실이 지금 이상하게 선명하게 느껴진다.

"말씀 하나 드려도 됩니까."

새로이가 말한다. 돌아서기 전에.

장대희가 눈으로 대답한다.

"저는 이 자리를 용서의 대가로 받는 게 아닙니다."

짧은 침묵.

"변화의 대가로 받는 겁니다."

장대희는 아무 표정도 짓지 않는다. 고개를 아주 조금 기울이는 것이 전부다. 그것이 동의인지 묵인인지 경멸인지 새로이는 알 수 없다. 아마 장대희는 그 세 가지가 지금 이 상황에서 구별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새로이는 문을 향해 걷는다.

비서가 엘리베이터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 새로이가 다가가자 버튼을 누른다. 문이 열리고, 새로이는 안으로 들어선다.

문이 닫힌다.

엘리베이터 내부는 전면이 거울이다. 천장도, 양쪽 벽도, 문도. 사방이 새로이를 비춘다. 그는 자신의 얼굴을 본다. 그리고 그 얼굴의 옆에 또 다른 얼굴을, 그 옆에 또. 거울이 거울을 비추어 복도처럼 늘어서는 무한한 반사 속에서, 박새로이가 수십 개의 박새로이가 되어 사라진다.

어느 것이 진짜인지 엘리베이터는 알려주지 않는다.

32층에서 1층까지, 그는 내내 그 물음 속에서 내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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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 The Handshake That Cost Everything — 클래스 제로: 용서의 배반 | GenNove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