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 이소연, 스물네 살.
새벽 다섯 시 반이면 이소연은 마루 끝에서 시작한다.
빗자루는 결 방향으로 쓸어야 한다. 북쪽 벽에서 남쪽 문 쪽으로, 한 번에 폭 넓게 밀지 않고 좁은 간격으로 반복해서. 나무 바닥의 결은 동쪽으로 눕혀져 있고 먼지는 습기를 머금은 새벽에 더 잘 모인다. 이것은 누가 가르쳐준 것이 아니라 여덟 해를 쓸면서 알게 된 것이다. 이소연이 열여섯에 고묘에 들어왔을 때 빗자루는 이미 북쪽 벽 모서리에 놓여 있었다. 지금도 같은 자리에 있다.
연습실은 가로 열두 보, 세로 열다섯 보다. 이소연은 이것을 발로 안다. 맨발이 바닥의 온도 변화를 읽는다. 창 쪽 구역은 겨울 아침에 항상 두 도 정도 낮고 중앙 마루는 여름에 가장 늦게 식는다. 지금은 사월이므로 중앙은 이미 발바닥에 익숙하게 서늘하고 북쪽 모서리만 아직 밤의 냉기를 붙들고 있다. 이소연은 그 모서리를 마지막으로 쓴다. 먼지가 가장 적은 자리이지만 가장 마지막에 쓰는 것은 규칙이 아니라 습관이다. 차이가 있는지 없는지 그녀는 생각해본 일이 없다.
빗자루를 제자리에 돌려놓고 식당으로 간다.
식판은 열두 개다. 원장 고 씨의 것이 가장 크고 가장 위에 쌓인다. 그다음은 정강사의 것, 그다음은 수련생 중 연차 순서로. 이소연의 것은 위에서 세 번째다. 윤채아는 네 번째. 나머지 일곱은 입문 순서대로 쌓인다. 이 순서를 이소연이 정한 것은 아니다. 처음 여기 왔을 때 이미 그렇게 쌓여 있었고 그녀도 그 순서 어딘가의 아래쪽에 놓였다가 해가 지나면서 위로 올라왔다. 식판을 쌓는 사람은 당번 수련생이고 당번은 돌아가며 맡는다. 그러나 순서를 기억하는 것은 언제나 이소연이다. 한 번도 틀린 적이 없기 때문에 아무도 그녀에게 감사하지 않는다.
된장국 냄새가 복도까지 번진다. 주방은 식당 안쪽이고 지금쯤 박 씨 아주머니가 두부를 넣고 있을 것이다. 두부는 항상 마지막에 넣는다. 이것도 이소연이 몇 년 전 한 번 주방을 들여다보다 알게 된 것이다. 그날 이후로 된장국 냄새를 맡으면 두부가 막 들어간 시간이라는 것을 안다. 그러니까 지금은 국이 거의 다 된 시간이고 다른 수련생들이 일어나기 약 이십 분 전이다.
이소연은 다시 연습실로 돌아간다.
빗자루로 쓴 바닥 위를 맨발로 걷는다. 발가락으로 결을 읽는다. 어제 저녁 연습 때 박하은이 미끄러질 뻔했던 자리, 마루 두 번째 판과 세 번째 판의 이음새 부분이 약간 일어나 있다. 손톱 끝으로 눌러보면 삐걱 소리 없이 내려앉는다. 못이 느슨해진 것이 아니라 판 자체가 수축한 것이다. 봄이면 늘 이런다. 이소연은 그 자리를 발바닥으로 기억해두고 오늘 오전 수련 때 박하은을 그 자리에 세우지 않겠다고 생각한다. 박하은에게 이 사실을 알려야 할지 생각해보다가 알려주지 않는 쪽이 낫겠다고 결정한다. 발이 기억하는 것은 발이 직접 겪어야 한다.
바깥에서 나뭇잎 소리가 난다. 안마당의 느티나무다. 고묘의 건물은 ㄷ자 모양으로 안마당을 감싸고 있고 느티나무는 그 안마당의 정중앙에 서 있다. 이소연이 처음 왔을 때 느티나무는 지금보다 허리 하나쯤 낮았다. 지금은 연습실 창문보다 높이 올라 있어서 바람이 불면 가지 끝이 유리에 긁힌다. 마당을 가로질러 우물채로 가는 길은 돌을 박아 만들었는데 돌 사이에 이끼가 끼어 비 온 다음 날은 미끄럽다. 세탁실은 우물채 옆이고 세탁실 옆은 창고다. 창고 안에는 지난 수십 년간의 공연 소품이 쌓여 있다. 맨 안쪽에는 이소연이 한 번도 열어본 적 없는 나무 궤짝이 있다. 자물쇠가 채워져 있는 것은 아니지만 아무도 열지 않기 때문에 이소연도 열지 않는다.
건물 배치는 이렇다. 정문에서 들어오면 왼쪽이 연습실 동, 오른쪽이 숙소 동, 안쪽이 원장실과 사무실이다. 정문은 높은 나무 대문으로 되어 있고 바깥 거리를 향해 있다. 수련생들이 사용하는 출입구는 숙소 동 쪽 담장에 난 협문이다. 협문은 정문보다 어깨 하나쯤 낮고 들어올 때 허리를 약간 숙여야 한다. 이소연은 고묘에 들어온 첫날부터 협문을 사용했고 정문을 사용해본 적이 없다. 정문은 원장이 쓴다. 외부 손님이 쓴다. 여기까지는 이소연도 안다. 하지만 그것이 규칙인지 관습인지 물어본 적은 없고 누가 설명해준 적도 없다.
여섯 시가 넘어 수련생들이 하나씩 일어나기 시작하면 이소연은 이미 연습실 정리를 마친 상태다. 강정희가 수요일마다 오고 오늘은 화요일이므로 강정희는 없다. 윤채아는 숙소 동 맨 끝 방을 쓴다. 이소연의 방에서 네 번째다. 새벽에 채아의 방에서는 소리가 나지 않는다. 채아는 새벽 기상 시간이 되어야 움직인다. 그 이전에는 소리가 없다. 이것은 채아의 특이한 점이 아니라 그냥 채아가 자는 방식이다. 이소연은 이런 것들을 기록하지 않는다. 다만 알고 있다.
오전 수련이 시작되기 한 시간 전에 원장이 이소연을 불렀다.
원장실은 숙소 동과 연습실 동이 만나는 모서리에 있다. 문은 두꺼운 느티나무 판으로 되어 있고 노크하면 낮고 고른 소리가 난다. 이소연은 두 번 두드리고 대답을 기다렸다.
"들어와."
원장 고 씨는 창가 책상에 앉아 있었다. 창으로 안마당의 느티나무가 보였다. 책상 위에 종이 한 장과 그 옆에 접힌 천이 있었다. 이소연은 문 안쪽에 서서 원장을 보았다.
"여기 와서 봐."
이소연이 책상 앞으로 갔다. 접힌 천을 보았다. 수련복이었다. 깃과 소매 끝이 흰색이고 몸판은 옥색. 올봄 새로 들어온 수련생들의 것과 같은 천이었다.
"네 거야. 새로 맞췄다."
이소연이 수련복을 들었다. 손가락으로 가늠해보니 어깨 폭이 지금 입는 것보다 좁았다. 허리 선도 안쪽으로 들어가 있었다. 한 치수 작은 것이었다.
"작은 것 같습니다."
"입어봐야 안다."
이소연은 그 자리에서 입어보지 않았다. 입어봐야 하는 공간이 아니었다. 그녀는 수련복을 다시 접어 들었다.
원장이 말했다.
"수련이 몸에 든 사람은 한 치수 아래를 입어야 맞아. 옷이 맞는 게 아니라 몸이 맞아가는 거야."
이소연이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원장이 책상 위의 종이를 들었다. 이달 연습 일정표였다. 이소연은 일정표를 받아 읽었다. 특이한 사항은 없었다.
"오월 지역 발표회에 네가 나간다. 준비해."
"알겠습니다."
"나가봐."
이소연은 문 쪽으로 걸어가다가 문 앞에서 멈추었다. 뒤돌아보지 않았다.
"원장님."
"응."
"작년 수련복은 어떻게 할까요."
"버려."
"알겠습니다."
이소연은 원장실을 나와 숙소 동으로 걸어갔다. 방에 들어가 장롱을 열었다. 작년 수련복은 두 번째 칸에 있었다. 꺼내어 반으로 접고, 다시 반으로 접었다. 옷감은 세탁을 많이 해서 부드러웠다. 처음 받았을 때 이 옷이 약간 크다고 느꼈는지 아닌지 지금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몸에 맞는다고 느낀 순간이 정확히 언제였는지도 모른다.
이소연은 접은 수련복을 들고 복도로 나왔다. 숙소 동 끝에 헌 물건을 모아두는 큰 상자가 있었다. 상자 안에는 낡은 버선 두 켤레와 끊어진 머리끈 몇 개가 있었다. 이소연은 접힌 수련복을 상자에 넣었다. 반듯하게 놓았다. 그러고는 돌아섰다.
식당에서 아침 준비가 되었다는 소리가 났다. 국그릇 부딪히는 소리, 의자 끄는 소리. 이소연은 복도를 걸어 식당으로 갔다. 그녀의 식판은 위에서 세 번째였다. 오늘도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