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 45.6 Billion Won, One Plastic Bag

형광등이 깜빡였다. 한 번, 두 번. 그리고 다시 안정되었다.

기훈은 그 빛의 흔들림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플라스틱 의자의 등받이가 그의 척추 어딘가를 정확하게 찌르고 있었는데, 그 불편함이 오히려 좋았다. 느낄 수 있다는 것. 지금 이 순간 자신이 여기 있다는 것.

책상 위에 종이 한 장이 놓여 있었다.

감열지였다. 영수증을 뽑아내는 기계에서 나오는, 손에 땀이 조금만 배어도 글씨가 번지는 그 종이. 정부 청사 어딘가에 있는 이 처리실 — 형광등 네 개, 책상 두 개, 빈 의자 여러 개, 창문 없음 — 에서 누군가가 그에게 건네준 그 종이에는 숫자들이 찍혀 있었다.

4, 5, 6, 0, 0, 0, 0, 0, 0, 0.

그 뒤에 원 표시.

기훈은 세 번째로 그 숫자를 세었다. 영이 몇 개인지. 맨 처음 셌을 때는 한 개를 빠뜨렸다. 두 번째에는 제대로 셌는데 믿기지 않아서 다시 셌다. 세 번째에도 결과는 같았다.

456억 원.

그 숫자는 실재하지 않았다. 아니, 실재하기는 했다. 종이 위에 있었으니까. 잉크로, 또는 열로 새겨진 그 기호들은 분명히 존재했다. 다만 기훈의 머릿속 어딘가에서 그것이 의미하는 바와 연결되는 회로가 끊어져 있었다. 456억. 사백오십육억. 그는 소리 없이 입술을 움직여 보았다. 아무 느낌이 없었다.

아까 그 남자 — 정장을 입고 넥타이를 맨, 표정을 지우는 훈련을 받은 것이 분명한 — 가 기훈에게 서류 몇 장에 서명을 받을 때 말했다. 계좌로 이체 완료되었습니다. 기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남자는 종이를 건네고 방을 나갔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났다.

그때부터 기훈은 지금까지 이 자리에 앉아 있었다.

얼마나 지났는지 몰랐다. 시계가 없었다. 핸드폰이 있었지만 꺼내기가 싫었다. 핸드폰을 꺼내면 무언가를 해야 할 것 같았다. 전화를 걸거나 문자를 보내거나. 그러면 이 방에서 나가야 했다. 이 방에서 나가면 그 숫자가 현실이 되어야 했다.

기훈은 종이를 집어들었다. 두 손으로, 마치 젖은 것을 다루듯 조심스럽게. 열 손가락이 다 있었다. 당연했다. 그런데 자꾸 확인하게 되었다. 그의 손은 반창고가 덕지덕지 붙어 있었고, 너무 오래 씻지 않아서 손금을 따라 때가 끼어 있었다. 깨진 손톱 두 개. 손목 안쪽의 긁힌 자국.

이 손으로 사람들을 잡았다. 이 손으로 놓기도 했다.

기훈은 그 생각을 했다. 하지 말아야지 했는데 했다. 눈을 감으면 더 선명하게 보였다. 눈을 뜨고 형광등을 바라보니 조금 나았다. 조금.

그는 종이를 반으로 접었다. 또 반으로. 작고 두툼한 사각형이 되었을 때 재킷 안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재킷은 게임이 시작되기 전부터 입고 있던 것이었다. 원래는 남색이었는데 지금은 무슨 색인지 알 수 없었다.

의자에서 일어났다. 무릎이 뻣뻣했다. 다리를 한 번 털고 문 쪽으로 걸어갔다.

복도에는 아무도 없었다.

편의점은 청사 건물을 나와서 오른쪽으로 두 블록 거리에 있었다. 밤이었다. 몇 시인지 몰랐지만 거리에 사람이 드물었고 공기가 차가웠다. 기훈은 양손을 주머니에 넣고 걸었다.

편의점 안은 밝았다. 냉장고가 윙윙거리는 소리, 계산대 위 작은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스포츠 중계 소리. 알바생은 고개를 들지 않았다. 기훈은 냉장 쪽으로 가서 캔맥주 하나를 꺼냈다. 가장 싸 보이는 것으로.

계산대 앞에 서서 주머니를 뒤졌다.

지갑이 있었다. 오래된 지갑, 가죽이 갈라진. 이 지갑을 게임 전부터 가지고 있었다. 게임 전날 빚쟁이한테 들이닥쳐서, 신발도 없이 쫓겨나던 그날에도 이 지갑은 주머니에 있었다. 지갑 안에는 카드 하나, 그리고 동전들. 카드는 한도가 없었다. 계좌에 456억이 들어 있었으니까.

기훈은 카드 대신 동전을 꺼냈다.

백 원짜리, 오십 원짜리, 십 원짜리.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세었다. 캔맥주 하나 살 만큼은 됐다. 가까스로.

알바생이 동전들을 받아서 계산했다. 잔돈 십 원을 돌려주었다. 기훈은 그 십 원짜리 동전을 받아서 다시 주머니에 넣었다. 비닐봉지는 거절했다.

편의점 바깥, 입구 옆에 작은 계단이 두 개 있었다. 기훈은 그 위에 앉았다. 차가운 콘크리트. 캔을 당겨서 뚜껑을 열었다. 탄산이 빠져나가는 조그만 소리.

첫 모금은 싱거웠다. 술이라고 부르기 민망한, 탄산 탄 보리물 같은. 그는 계속 마셨다. 차가웠다. 편의점의 차가운 냉장고에서 막 꺼낸 것이라서. 식도를 타고 내려가는 차가움이 지금 가장 선명하게 느껴지는 감각이었다.

456억.

그는 아까 그 숫자를 다시 머릿속에 떠올려 보았다. 역시 아무 느낌이 없었다.

핸드폰을 꺼냈다. 불 꺼진 화면. 잠금을 풀었다.

연락처를 열었다. 맨 처음 보이는 이름들을 스크롤했다. 딸 번호가 있었다. 가영이. 정확히는 아이 엄마의 번호 아래 가영이라고 저장되어 있는 번호. 기훈은 그 이름 위에 엄지손가락을 올렸다가 내렸다.

아래로 내렸다.

또 다른 이름을 찾았다. 장성진. 대부업체. 두 달 전 마지막 통화에서 그 사람은 내일까지 안 갚으면 직접 찾아간다고 했었다. 기훈은 그 번호를 눌렀다.

신호가 두 번 갔다.

여보세요.

낮고 칙칙한 목소리. 기훈은 자신이 누구인지 말했다. 잠깐의 침묵. 그리고 상대방이 뭔가를 되물으려 할 때 기훈이 먼저 말했다.

다 갚겠습니다. 이자까지 다. 내일 이체할게요.

또 침묵. 이번에는 좀 더 길었다.

확실합니까.

확실합니다.

전화가 끊어졌다.

기훈은 핸드폰 화면이 꺼질 때까지 들여다보았다. 자신이 방금 느낀 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 수 있었다. 홀가분함. 어깨에서 무언가가 빠져나가는 느낌. 오랫동안 꽉 쥐고 있던 것을 놓아버렸을 때의 그 느낌.

그리고 그 느낌이 찾아왔을 때, 동시에, 위장 어딘가에서 이상한 감각이 올라왔다. 뒤집히는 것 같은. 역겨운 것 같은. 방금 전 자신이 무엇을 느꼈는지가 정확히 역겨웠다.

죽은 사람들이 있었다. 많이.

그들의 돈으로 빚을 갚는다. 그것이 홀가분하다.

맥주 캔을 입에 가져갔다. 마셨다. 삼켰다. 또 마셨다.

빚쟁이한테 먼저 전화했다. 딸한테 먼저 전화하지 않고. 기훈은 이 사실을 씹어보았다. 씹으면 씹을수록 뭔가가 나왔다. 설명하기 어려운 뭔가가. 자신에 대해 알고 싶지 않았던 뭔가가.

그는 시선을 들었다.

편의점 유리창이 앞에 있었다. 안에서 바깥을 보면 유리가 거울처럼 되는 구간이 있었다. 밖에서 안을 보면 반대로, 안이 훤히 보이지만 특정 각도에서는 유리 면 위에 바깥 풍경이 희미하게 겹쳐지는. 기훈은 그 유리를 보고 있었고, 유리 속에서 그 남자의 얼굴이 보였다.

정확히는 얼굴이라기보다 웃음이었다. 아랫니가 드러나는 방식으로 올라간 입꼬리. 넓적한 얼굴, 짧은 목. 게임에서 죽은 남자. 잔인하고 크고 끝까지 살아남을 것 같았던 남자. 덕수.

기훈은 눈을 깜빡이지 않았다.

그 얼굴은 유리 위에 잠깐 걸려 있다가 — 지나가는 차의 헤드라이트가 편의점 정면을 스쳤을 때 — 사라졌다. 밖에서 보이는 것은 다시 평범한 편의점 내부였다. 냉장고들, 진열대들, 텔레비전, 알바생.

기훈은 맥주를 다 마셨다.

빈 캔을 손으로 눌러서 납작하게 만들었다. 옆에 놓인 쓰레기통 위에 올려두었다.

일어섰다.

주머니 안에 456억이 들어 있었다. 감열지에 인쇄된 숫자로. 그 종이 조각을 손으로 감쌌을 때 느껴지는 것은 그냥 종이였다. 얇고 반듯한, 열을 받으면 색이 변하는.

기훈은 편의점 앞 계단에서 내려와 인도 위에 섰다.

딸 이름이 생각났다. 가영이. 지금쯤 자고 있을 것이다. 아니면 자고 있지 않을 것이다. 알 수 없었다. 마지막으로 직접 본 것이 언제인지 기억이 흐릿했다.

밤 공기가 차가웠다. 멀리서 버스 한 대가 지나갔다.

기훈은 서 있었다. 456억을 가진 채로, 편의점 앞에, 동전으로 맥주를 산 영수증도 없이.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은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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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 45.6 Billion Won, One Plastic Bag — 당첨금의 저주: 지폐로 쌓은 폐허 | GenNovel